1심 ‘위력’ 행사 보기 어렵다… 무죄 판결
2심 ‘위력’ 행사 인정, 징역 3년6개월
대법원, 2심 결과 확정 판결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9일 서울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내 성폭력 유죄확정 선고 후 기자회견이 열렸다.ⓒ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주문. 상고를 모두 기각합니다.”

9월 9일 오전 10시 27분, 김상환 대법관의 판결에 적막이 감돌던 대법원 1호법정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 대해 3년6개월 징역형을 내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날 1호법정은 여성단체 활동가와 일반 시민, 취재진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방청을 위해 오전 7시30분 부터 대법원 동문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은 방청석에 앉을 수 있는 100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30여명은 벽면을 따라 서서 판결을 기다렸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약 7개월간 수행비서로 일하던 김지은씨를 4회 위력으로 간음하고 1회 위력으로 추행했으며 5회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8월 1심은 안 전 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항소심 재판부는 10개 공소사실 중 9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3년6개월, 성폭력 수강명령 40시간, 취업제한 5년을 선고했다. 1심과 2심 판결을 가른 것은 ‘업무상 위력의 행사 여부’ 였다. 

1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10개 공소사실 전체를 ‘무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씨의 관계상 위력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위력의 ‘행사’ 사실은 별개로 보았다. 위력은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뜻한다. 

재판부는 “안씨가 피해자를 포옹한 것, 외롭다고 안아달라고 말한 것 외 별다른 유·무형상 위력이 행사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안씨의 언행이 김씨의 자유의사를 제압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학에 충분할 정도로 위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2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반면 2심 재판부 서울고등법원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는 “안씨는 권력적 상하관계로 김씨가 적극 저항하지 못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또 안씨 측이 공격한 피해자가 사건 발생 이후 안씨의 지시를 따라 식당을 알아보는 등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취한 것에 대해서도 “편협하다” 지적했다. 재판부는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입기도 하는 점에 비춰볼 때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날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 심리를 할 때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폭행, 협박 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에 해당”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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