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역행’ 하는 K팝 뮤직비디오, 여성 성적 대상화 여전
‘시대 역행’ 하는 K팝 뮤직비디오, 여성 성적 대상화 여전
  • 최연경 인턴기자(덕성여대 스페인어 전공 4학년)
  • 승인 2019.09.04 17:28
  • 수정 2019-09-04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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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입은 여성들은
쉴 새 없이 엉덩이 흔들고
카메라는 가슴 클로즈업
여행 가방 속에서
여성 나오는 장면도

일부에선 여성 가수들의
‘주체적 섹시’ 주장도
사이먼-도미닉의 ‘make her dance’ 뮤직비디오 한 장면. @유튜브 AOMGOFFICIAL
사이먼-도미닉의 ‘make her dance’ 뮤직비디오 한 장면. @유튜브 AOMGOFFICIAL

 

조용한 방 한가운데 놓여 있는 여행 가방 밖으로 여성의 팔이 튀어 나온다. 가방이 쓰러지며 담겨 있던 여성의 신체가 쏟아져 나온다. 여성은 바닥을 기어 가방을 벗어난다. 살인사건 현장이나 범죄 영화의 예고편이 아니다. 인기 가수 선미가 8월 27일 공개한 신곡 ‘날라리’의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의 도입부다.

앞서 8월 21일 공개된 랩퍼 사이먼-도미닉(쌈디)의 ‘make her dance’ 뮤비는 2분57분 가량의 영상 내내 비키니를 입고 트월킹(twerking) 하는 여성들의 ‘엉덩이’가 대거 등장한다. 트월킹은 엉덩이를 거세게 흔들며 추는 춤의 한 종류다. 카메라는 여성들의 가슴과 엉덩이를 연신 클로즈업 한다.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여성 혐오와 왜곡된 성 관념에 대한 변화 요구가 거세지만 K-pop(K팝) 뮤비 시장은 시대의 흐름을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몸’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아직도 일상적이고 만연하다.

여성과 남성의 몸 모두 성적 대상화 된다. 그러나 시장은 유독 여성의 몸을 더 빈번하게, 수동적인 형태로 만들어 소비한다. 많은 경우 여성은 욕망을 행하는 주체가 아닌 욕망의 대상으로 전시된다.

선미의 신곡 ‘날라리’ 뮤비가 공개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도입부에서 여성을 토막 살해하고 가방 등에 담아 시체를 유기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2015년 잡지 ‘맥심 코리아’에서 중년 남성이 여성을 트렁크에 가둬 납치하는 모습을 화보로 촬영해 논란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맥심 코리아는 논란 후 사과문을 발표하고 잡지를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실제로 최근 ‘어금니아빠 사건(2017)’, ‘대전 캐리어 시체유기 사건(2017)’, ‘빌라 동거녀 살인 사건(2018)’ 등 가방을 이용해 시체를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수 선미의 ‘날나리’ 뮤직비디오 한 장면. 여행 가방에서 빠져 나오는 모습. ⓒ‘날라리’ 뮤직비디오 영상.
가수 선미의 ‘날나리’ 뮤직비디오 한 장면. 여행 가방에서 빠져 나오는 모습. ⓒ‘날라리’ 뮤직비디오 영상.

 

뮤비 ‘날라리’는 아트 디렉터 룸펜스(38)가 감독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뮤비 다수와 현아의 ‘lip&hip’, 아이유의 ‘스물셋’ 등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K팝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선미와는 ‘가시나’, ‘느와르’, ‘주인공’ 등을 함께 작업했다.

룸펜스는 앞서 선미의 ‘가시나’ 뮤비에서도 여성을 시체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상에서 선미는 혈색 없는 모습으로 욕조에 누워 등장한다. 과도한 SNS 중독인 현대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인 ‘누아르’에서는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거나, 머리에 총을 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누리꾼들은 뮤비에서 선미가 점차 피학적으로 다루어진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같은 방식은 여성을 ‘수동적이고 생명 없는 인형’으로 여겨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성적인 욕망’은 생물학적인 성적 충돌과는 다른 문화적인 것”이라며 “가장 섹슈얼한 상상력이 범죄에 당해 여행 가방에 갇히거나 묶인 여성인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선미의 뮤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범죄를 연상시켜서다”라며 “피학적인 상태의 여성을 섹슈얼함의 가장 앞에 두는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황 평론가는 선미의 ‘날라리’가 ‘주체적 섹시’를 나타낸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주체성은 욕망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주체적 섹시’는 주체성의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주체적 섹시’는 사회적 요구나 강압이 아닌 자신이 원해서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일컫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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