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보좌관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보좌관이 필요하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9.09.07 08:44
  • 수정 2019-09-07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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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페미’에게 듣는다]
인턴은 여자가 더 많은데
4급 보좌관 중 8.6%만 여성
8·9급 하위직에 몰려 있고
차 대접 등 잡무 떠맡아

“국회는 원래 그런 곳”
관행 깨고 ‘성평등 국회’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
국회의사당.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5.5세, 남성 83%다. 보좌진 중 가장 높은 직급인 4급 보좌관 역시 91.4%는 남성이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이 곳에는 298명의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진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의원 한 명당 9명까지 보좌진을 둘 수 있으니 국회에서 일하는 보좌진은 23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여성은 869명, 비율로 따지면 38.2%로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남성 중심 조직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임계점으로 ‘여성 30%’를 제시한다. 여성 비율로 봤을 땐 이미 ‘의미있는 변화’가 이뤄졌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50대 후반 남성’ 차지다. 20대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8.5세, 남성 83%다. 보좌진 중 가장 높은 직급인 4급 보좌관 역시 91.4%는 남성이다. 가장 낮은 8·9급에 몰려있는 여성 보좌진들은 입법전문가, 정치인 등을 꿈꾸며 여의도에 발을 디디지만, ‘남초’ 국회에서 ‘관행’처럼 벌어지는 은근한 성차별 속에 제대로 역량을 펼쳐볼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다.

견고한 국회 유리천장을 뚫고 의미있는 균열을 내기 위한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국회페미’가 대표적이다. 보좌진과 국회 직원 등 여성 30여명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일터로서, 민의의 대표기관으로서 성평등한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 여성 근로자 페미니스트의 모임’이라고 소개한다. 지난해 페이스북 등 온라인 기반으로 목소리를 내온 이들은 그 해 8월 14일 비서 성폭력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이틀 뒤 모임을 결성했다. 모임 1주년을 맞아 익명으로 활동하는 전세, 포도, 밍밍, 김밥 등 네 명을 국회에서 만났다.

“의원실 두 곳에서 일했는데, 한 곳에선 차 대접을 하거나 택배를 가지러 가는 모든 잡무가 여성 비서의 몫이었다.”(김밥)

“전에 있던 의원실은 ‘지옥’이었다. 여자 보좌진에게는 절대로 국회 상임위원회 업무를 시키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같은 직급의 남자 비서도 있는데 내게만 잡무를 시켜서 ‘왜 내게만 시키냐’고 물었더니, ‘쟤(남자)는 시켜도 잘 모른다’고 하더라.”(포도)

“이런 것(성차별)에 문제제기 하면 ‘국회는 원래 이런 곳’이라거나 ‘어머니의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전세)

“여성 보좌관이 있는 의원실과 없는 의원실은 큰 차이가 난다. 남성 보좌관은 여성 비서가 차 대접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반면, 여성 보좌관은 여성에게만 시키지 않는다. 시작점이 다르다.”(밍밍)

이들이 겪은 국회는 ‘남성 중심 사회’로 요약된다. 국회에서 다과준비, 탕비실정리, 차 대접, 전화 받기, 택배 수거는 여성 보좌진의 업무다. 의원실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대부분 여성 비서가 앉는다. 이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허드렛일을 강요 당하는 반면, 정책을 배울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국회페미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8월 1일 기준 국회의원의 정무·정책 보좌를 총괄하는 4급 보좌관 총 595명 중 여성은 51명(8.6%)에 불과했다. 보좌관과 함께 정책 업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5급 비서관 중 여성은 120명(19.9%)이었다. 하위직급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은 높아진다. 직급별 여성 보좌진 비율은 △6급 비서관 26.7% △7급 비서 37.4% △8급 비서 60.5% △9급 비서 63.3% △인턴 비서 52.3%로 집계됐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참모이자 비서, 홍보담당자다. 가끔은 의원의 민원을 해결해주고, 선거 때는 당선을 위해 함께 뛰는 파트너다. 그러나 하위직급은 회계와 잡무를 담당하는 행정비서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국회페미는 “의원실의 최종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보좌관과 비서관의 85.7%가 남성이다보니 의원실 내부 뿐 아니라 의원의 의정활동 전반이 남성 중심적 사고에 치우쳐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보좌진의 ‘생사여탈권’을 쥔 의원과 관계가 삐끗하면 바로 다음 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의원실 살림을 책임지는 보좌관도 비서의 임면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 보좌진들이 익명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국회페미에 참여하려면 국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성이라는 점을 인증해야 한다. 구성원 서로를 보호하고 민주적으로 모임을 운영하기 위한 조치다. 국회 조직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보좌진은 고용 상태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익명성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전세)

유리천장과 성차별 문화가 공고한 국회에서 ‘여성 페미니스트’로 일하는 것은 도전의 연속이다. 지난 1년 간 국회페미는 국회 곳곳에 성차별 타파를 위한 캠페인 포스터를 붙이며 일터로서 성평등한 국회 만들기를 위해 뛰고 있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국회에도 변화 바람이 분다.

“1년 전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보냈을 때는 기자들이 국회 내 미투 사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저희를 성폭력 피해자의 대리처럼 여겼다면 지금은 보도자료를 내면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국회의 성불평등 구조 자체에 관심을 갖는 취재진이 많아졌다.”(밍밍)

성평등한 국회는 하나만 바뀐다고 이뤄지진 않는다. 상명하복식 ‘형님’ 문화,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국회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것도 중요하다. ‘정책 업무를 하고 싶다’, ‘보좌관이 되겠다’는 여성 보좌진의 요구를 파악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차근차근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50대 남성 엘리트’ 얼굴을 한 국회가 과연 민의를 대표할 수 있을까. 다양한 시민과 가치관을 정책에 반영하려면 보좌진 구성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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