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을 위한 2003년 서울채용박람회’

‘바글바글’. 5월 16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청년층을 위한 2003년 서울채용박람회’장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몰려든 젊은 남녀로 가득했다. 그 날 하루 1만2천 명이 넘는 숫자가 다녀갔을 정도. 바글대는 사람들 가운데 일자리 구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성’들의 애 타는 구직 여행을 따라가 봤다.

‘경력’보다는 ‘초보’ 많이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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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2003 서울 채용박람회에는 하루 1만2천명의 관람객이 찾는 등 대성황을 이뤘다.

경력 8년을 자랑하는 배정숙(29)씨 발걸음은 누구보다 분주했다. 경력자가 느끼는 채용박람회장의 효용성은 어땠을까. “사람이 너무 많고 어수선해서 떨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에 임하기는 어려웠어요. 하지만 한 곳에서 많은 업체를 접할 수 있어 좋았고 정보도 많았죠.”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완전 초보를 원하더군요. 경력자가 도전할 곳이 별로 없었고 체계도 부족해서 정식 사원 모집 같지가 않았어요.”

경력자답게 배씨는 채용박람회를 앞두고 많은 준비를 해왔다. 이력서를 미리 써온 것은 기본이고 사진·경력증명서에 졸업·성적증명서까지 가져왔을 정도. “이력서는 미리 준비했어요. 그래야 여러 업체도 다닐 수 있죠. 또 참가한 업체들 가운데 희망 업종인 총무·인사 쪽을 구하는 업체를 미리 체크해왔어요. 롯데제과에 면접하면서 가져온 성적증명서도 활용했죠.” 미래의 관리자를 꿈꾼다는 그는 이날 처음부터 끝까지 채용박람회장을 지키며 그를 알아주는 업체를 찾아다녔다. 군데군데 널린 정보들도 놓치지 않으면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 국민생명에서 3년 정도 일했어요. 올 8월에 졸업하는데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는 좋은 곳에 가고싶어요.” 오자마자 세 업체에서 면접을 하는 열성을 보인 최은경(25)씨. “대기업은 별로 없고 이름을 잘 모르는 중소업체가 많아요. 면접 볼 만한 업체가 마땅치 않더군요. 여자는 정말 취업문이 좁아요. 남자들이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문제는 업체가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하도 취업이 어렵다보니 그는 신 직업관에서 웨딩플래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도 했다고. “웨딩플래너가 여성들에게 적절한 것도 같은데 문제는 월급이 적다는 거죠.” 웨딩플래너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볼 목적도 안고 왔던 그지만 적은 연봉이 맘에 걸리는 눈치다. “취업하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나중에라도 지원해볼 수 있도록 각 업체들에 대한 정보와 자격조건·채용 인원을 다 적어 갈 생각이에요.”

서류심사부터 남녀차별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는데 여러 사정이 안 맞아 취직하기로 결정했어요.” 올 초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 동기생들보다 좀 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든 문화정(23)씨. “박람회에 오기 전 몇 군데 원서를 내봤는데 최종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더군요. 금융권에 가고 싶지만 그 쪽에서는 내가 눈에 차지 않나 봐요.” 그런 만큼 이 자리가 소중하기에 오전부터 오후까지 대여섯 군데가 넘는 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면접 기술도 익히고 업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게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채용하고 직접 연결되는 줄 알았는데 업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정도였어요. 인터넷에서도 알 수 있는 수준이었죠. 자기소개서도 써 왔는데 특별히 필요하지 않았구요.” 잔뜩 기대를 안고 왔던, 오는 8월 졸업을 앞둔 김보경(26)씨는 이 자리가 다소 실망스럽다.

“특히 전문대나 고졸을 원하는 업체가 많았어요. 구직하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들인 거 같은데…. 얼마 전에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장과 비슷해요. 그 때 같이 간 친구들은 이번 박람회에 안 오려고 하더군요. 다 똑같을 거라면서요.” 그래도 김씨는 오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찾는 직업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 “오늘 아침에도 한 회사에서 면접을 봤는데 서류합격자 중 남자는 70명인데 여자는 세 명뿐이었죠. 서류심사부터 보이지 않게 남녀 차별이 있는 것 같아요.” 실망 속에서도 종일 박람회장을 떠나지 않으며 여러 업체의 면접 줄에 서있는 김씨에게서 조금 늦은 나이에 첫 직장에 도전하는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지만 다 남자만 원해요. 여성을 위한 직업은 없는 거 같아요. 여성을 위한 신 직업도 왜 맨날 코디네이터나 애견미용사 같은 것만 나오는지 몰라요.” 둘러보는데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한 시간도 채 안 걸렸다며 박람회장을 빠져 나오는 한아름(25)씨. “한 업체에서 면접을 보기는 했는데 특별히 관심 있는 업종도 아니어서 잘 모르겠어요. 외국 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를 하고싶은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죠.” 한씨의 푸념석인 자기 진단. 한씨를 따라 와봤다는 친구는 “졸업했는데 내가 할만한 일이 없는 거 같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해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있는 여성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채용박람회 현장에서 59명이 채용됐고 1차 면접에 합격한 사람은 264명. 박람회장에 가지 못해 아쉬운 사람은 노동부에 찾아가 구인 업체가 나와있는 행사용 책자부터 받아보자. 행사에 나온 125개 업체는 당일 면접으로 1214명을 채용할 예정이었기에 나한테 꼭 맞는 일자리가 어딘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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