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방학 시작 전 한 학생에게서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1년 전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다가 졸업 논문만 남겨 놓고 출산을 위해 잠시 쉬겠다고 한 학생이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논문을 언제까지 완성해 제출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 시작 전 일주일은 대다수 대학에서 최종 논문심사 기간이다. 스웨덴 대학에서는 인문사회 계열 졸업생의 경우 엄청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다른 학생 논문 심사 때 지정토론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고 자신의 논문을 방어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 기간 중에도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생활을 위해 학자금 융자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아이가 있을 경우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논문심사 과정을 혼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부모나 다른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논문심사에 응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논문심사 당일. 시간이 되어 세미나실에 가보니 그 학생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수유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내의 논문심사를 위해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함께 왔다면서 곧 수유가 끝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몇 살이냐고 물으니 3개월된 신생아라고 하면서 아이가 태어나서 갖는 첫 가족나들이라고 웃으며 답한다. 먼저 세미나 실에 들어가 학생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수유를 마치고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황급히 들어와 앉았다.

토론자의 질문과 심사자의 평가가 끝날 때까지 1시간15분이 훌쩍 지났다. 휴식시간에 학생은 잠시 동안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수유를 하고 돌아왔다.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 그리고 쟁점토론으로 이어진 총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학생의 논문심사가 모두 끝이 났다. 결과는 최고 학점으로 논문심사 통과. 밖으로 뛰어나가 아기와 남편을 얼싸 안고 함께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보건기구가 제정해 매년 8월 1~7일 진행되는 유아수유주간 캠페인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이를 안고 온 이 학생의 논문심사는 더 큰 공명을 가져다 주는듯 하다.

이사야 벌린은 개인이 갖는 1차적 자유와 2차적 자유에 대해 개인이 누구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제한적 자유, 소극적 자유만을 향유할 수 있다고 본다. 완전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주어져야 성취가 가능하다. 내 스스로의 선택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재능, 지식이나 경제적 능력이 없을 때 그 자유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 논의는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들이 옛 농장으로 돌아가 노역의 길로 다시 들어서는 역설을 제2의 자유, 즉 적극적 자유의 근거인 지식, 교육, 경제적 능력의 부재로 인해 생긴다고 본 필립 페티의 공화정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논문 통과는 이 학생에게 취업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중요한 열쇠였다. 그럼 무엇이 학생의 적극적 자유를 가능하게 했을까?

자녀가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초저금리 학자금 융자제도, 대학무상교육, 임산부 보모지원제도, 논문 발표 때와 같이 배우자가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 아이를 대신 돌보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자의 연차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법,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직장이 있어 진정한 자유인의 첫 단계를 들어설 수 있었다.

완전한 자유는 법과 제도를 통해 각자의 국민이 간절히 꿈꾸고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돌보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필요로 한다. 시장 주체들도 함께 동참해야 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자유도 타인에게 해악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보호받는다고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는 아직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자유제한의 근거로 남아 있다. 진정한 자유의 향유를 위해서는 방종을 배제하고 타인의 배려가 우선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특별한 스펙 없이 입학과 취업에 절망하는 학생들, 자녀의 미래에 불안해 하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자유의 날개다. 말의 성찬과 위선, 법의 실종, 나만 선이라는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부터 재정립하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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