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문에서 젠더 감수성 의문

혼인빙자간음죄 폐지 주장하며
“남성의 구애에 기망은 필연
…주의할 책임은 여성에”

지속적 성희롱 경범죄화

의제강간 연령 상향 반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치고 승강기를 탑승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 로비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치고 승강기를 탑승하고 있다. /뉴시스

9월 2~3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 후보자의 기고문, 논문 등에 나타난 젠더 의식이 위험하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조후보자는 형법학자로서 국가형벌권의 과잉을 우려하는 기조 위에서 성의 자유와 주체적 의지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조후보자는 혼인빙자간음죄 폐지를 요구하며 쓴 2009년 논문에서 “남성은 구애 과정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혼인 약속을 하기 마련”이라며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성교를 하였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부담해야한다”고 여성 책임을 강조한데 이어 지난해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 신분으로 법률신문에 쓴 기고문에서는 현재 16세로 상향 요청이 높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현행대로 13세로 유지하자는 주장과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같은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을 경범죄로 처벌하자는 제안을 담았다. 지난해 미투운동이 뜨겁게 확산되고 있었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 후보자의 성폭력에 관한 관점이나 젠더 인식이 여성과 미성년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미흡함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의 법률 인식과 정책 방향에서 젠더 의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면밀히 따져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후보자는 그동안 형법학자로서 젠더 인식이 높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2003년 『형사법의 성편향』을 통해 성폭력, 가정폭력 등에 관한 형사법에 깔려있는 남성중심적 관념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는 2018년 법률신문 ‘연구논단’에 △‘미성년자 의제강간·강제추행 연령개정론’(6월18일), △‘성폭력범죄 수사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및 무고죄(7월6일)’, △‘‘지속적 성희롱’의 경범죄화 제안’(8월28일) 3편의 기고문을 실었다.

첫 기고문에서 조 후보자는 현재 13세 미만으로 규정한 의제 강간 적용 연령을 상향하자는 데 대해 반대하며, 13~15세와의 합의 성교는 양육·교육 등의 보호 관계나 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행처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13세 이상 16세 미만 청소년의 합의 성관계를 비범죄화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적으로 의제강간 최저기준이 13세 미만인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며 다수의 국가가 16세를 채택하고 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현행 만 13세 이하로 제한된 의제강간 연령 때문에 아동, 청소년은 성폭력과 성착취 상황에서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조 후보자를 비판하면서 의제강간 연령 상한을 촉구하고 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반대와 별개로, 이 기고문이 예로 들고 있는 4건의 미성년자 합의 성교 사건 가운데 여성이 피의자인 사건이 3건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미성년자 강간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인 상황인데 가해자가 여성이라 주목을 끄는 사건을 인용하는 것은 연구물로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도 없다”고 했다.

성인지 수준이 문제되는 것은 ‘‘지속적 성희롱’의 경범죄화 제안’이다. 조후보자는 성희롱을 성폭력범죄와 같이 취급하면서 범죄화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이라며 경범죄처벌법 내에 지속적 성희롱을 신설해 가해자를 1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스토킹처벌법을 제정하겠다는 게 정부의 공약이었던 만큼 지속적 성희롱을 지속적 괴롭힘과 불법성이 같다는 논리라면 지속적 성희롱에 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국 후보자의 2009년 논문 ‘혼인빙자간음죄 위헌론 소고’는 헌법재판소에서 혼인빙자간음죄가 위헌 판결을 하기 직전에 발표되었다. 이 글에서 조 후보자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의 능력을 폄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남성의 구애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인격, 능력, 체력, 건강, 직위, 재산 등에 대한 일정한 과장과 기망을 내포한다. 그리고 남성은 구애 과정에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혼인에 대한 약속을 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남성과 동일한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은 남성의 이러한 구애행위의 특징을 알고 있거나 알고 있어야 하며, 혼인에 대한 약속을 포함한 상대 남성의 인격과 품성, 그리고 그의 구애의 진의를 자기 책임 하에 면밀히 검토한 후 성교 여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만약 그러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성교를 하였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고 씀으로서 정작 남성 가해자를 두둔하고 여성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기망한 남성의 책임은 묻지 않고 기망당한 여성을 비난하는 다분히 남성중심적 사고”라면서 “여성들의 미약한 판단력이 문제가 아니라 혼인 상대자를 믿고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을 기망한 남성의 행위가 문제이다”라고 비판했다.

조 후보자가 지난 20일 첫 번째로 발표한 정책공약 ‘국민들의 일상의 안전과 행복, 지켜드리겠습니다’ 정책도 기존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동범죄자 집중관리 강화 △정신질환자의 국가 치료를 통한 범죄 예방 △스토킹처벌법 제정·가정폭력처벌법 개정 △폭력 집회·시위 엄정 대응 등이 날 발표한 정책 가운데 스토킹처벌법은 문재인 정부가 통과를 약속한 내용이고 가정폭력 가해자 즉시 체포 역시 지난해 연말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다. 정신질환자 국가치료를 통한 범죄 예방은 28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확산시키는 등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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