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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공부벌레란 한 마디로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한다는 의미이다. 공부기계가 된다는 말이다. 기계와 사람, 기계와 생명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람, 생명의 요체는 기계가 못 갖는 자유, 자율의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의 공부벌레가 돼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이 각종 ‘사’자 붙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혹은 이에 상응하는 박사과정을 끝낸, 공직 엘리트들, 이른바 고위 관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아니 전 세계는 자율 능력이 퇴보한 거대한 공적 엘리트 집단에게 한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전 세계의 운명을 맡기고 있다는 말인데, 이것이 인류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재앙적 의미는 멀리까지 안나가도 우리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찬찬히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1980년 대 말 정치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수립됐고 이로 인해 시민사회라는 공간이 형성됐다. 그런데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시민사회가 가장 혼신을 다해온 일들은 무얼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시민사회의 청사진을 현실화 해 가는 ‘새로운 사회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전문 행정 관료들과의 싸움으로 소진시키는 과정이었다. 행정관료들이 국가 정책의 이름으로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사회적인 순기능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인 정책들을 저지시키기 위한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동강 살리기 운동이 그랬고 최근에는 네이스(NEIS) 사업과 새만금 간척 사업이 그 예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립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개발론자와 생태주의자 사이의 대립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한번, 황당한 정책들의 반복 재생산의 원인을 공부벌레/공부기계 엘리트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사람, 생명의 요체가 자율이라고 할 때, 그 자율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생명체의 특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체가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 생태계에 대해 전(全) 방위적인 온전한 감수성, 반응성을 지닐 때 발휘된다.

그런데 공부벌레 교육은 철저하게 이 온전한 감수성을 체계적으로 박탈해간다. 육감(六感)을 모두 발휘해서 체험해야 하는 삶을, 학교는 이런 삶과 가능한 한 최대한 유리된, 파편화된 지식으로 무장한 채, ‘삶은 몇 가지 요소로 환원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학생들 개개인의 존재 값을 일등품부터 최하품까지 점수로 정하는, 사지선다형 시험은 이런 체계적인 감수성 박탈을 위한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인 기재이다. 이 과정을 우수한 값(성적)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바로 공부벌레 엘리트들이고 이들이 각국의 정책 관료, 더 나아가 세계의 정책을 맡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때로는 시민사회마저 온전한 감수성을 상실했다는 징표를 보이는 것이다. 몇 해 전의 교직 조기정년제는 개혁적 성향의 장관이 내놓은 교육개혁안이었고 교육계와 교육운동계는 반대하는 보수파와 지지하는 개혁파간의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양쪽은 그 시점에서 자기 역량을 온통 이 싸움에 퍼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어렵게 개혁파가 이긴 듯 했으나, 그 정책의 성과라는 게 과연 어느 정도 있기라도 한 것일까? 교직 조기 정년제에 의해 일단의 교사들이 퇴직금까지 받고 교단을 떠난 바로 직후, 교사 부족으로 학교는 다시 이 교사들을 기간제 교사로 불러 들여야만 했다. 애초에 이 정책은 교육문제의 뿌리와는 상관없는 교육문제의 잔가지 중에서도 잔가지에 불과한 교사정년을 마치 교육개혁의 핵심 요체인양 들고 나왔다. 교육시민계는 이런 잔가지 갖고 싸울 때가 아니라는 제언으로 일축해 버리고, 뿌리를 건드리는 의제를 들고 나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민사회권도 공부벌레 세대가 아닌가?

조기유학을 택하는 사람들은 서구는 다르다고 말할까? 726호 기사에서 다룬, 미국학교와 우리 사회의 시간표 비교는 그런 환상을 줄만 하다. 그러나 그 기사는 외국 교육제도가 좀 숨통이 트일만하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져야지 그 이상 확대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벌레 교육의 원조는 서구 근대식 학교이기 때문이다. 미국학교의 학생 존중을 극구 예찬하며 이는 개인주의의 역사적 전통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런 교육체제가 길러낸 사람이 부시대통령이고 그를 지지하는 건 다름 아닌 그 개인주의 교육을 잘 받은 미국민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편으로는 자국민에게 생산보조금을 지급해 자국의 농산물 시장가를 최대한 낮추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필경 구미를 제외한 전세계 수천 만 명 내지 억 단위의 농민 실업자를 양산해낼, 이런 WTO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누가 입안하고 그들을 길러낸 건 무엇인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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