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로서의 직장 내 성희롱』 저자 최윤정
‘미투’ 이후 성희롱 상담 50% 늘어
최근 5년간 산재 신청 32건 뿐
여성 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위한 성인지 관점 조사해야

세종학당 재단 최윤정 부장.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학자 최윤정씨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터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뒤에 어떻게 해야할까. 고충상담원을 통해 회사에 문제제기하면 가해자와 공간이 분리되며 조사를 거쳐 가해자에게 적당한 징계가 내려진다. 거기까지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피해는 어디서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보상을 받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법적 소송을 벌어야 한다.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하는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이하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윤정(41·사진)씨는 최근 『산업재해로서의 직장 내 성희롱』을 내고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노동조건의 문제로 일종의 산재에 해당한다”면서 “직장 내 성희롱을 산재로 명시한다면 성희롱 예방 효과와 함께 피해를 구제하는 선택지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여성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최씨는 2004년 자신의 석사 학위 논문인 『‘산업재해’로서의 직장내 성희롱에 관한 연구』를 보강해 15년 만인 올해 책으로 펴냈다. 최씨는 “2000년대 초반 여성학을 공부하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를 당당히 말하고 사회 안에서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과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한 사회적 조건과 방법을 고민하면서 논문을 썼다”면서 “하지만 15년이 흐르는 동안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해결 노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2018년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은 급증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2018년 직장 내 성폭력 상담 건수는 819건으로 2016년(509)건보다 50% 이상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상담 건수에 비해 산재 신청 건수는 저조하다. 근로복지공단이 조배숙 민주평화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8년 9월까지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산재 신청 건수는 총 32건에 불과하다. 연도별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1~2건이었으나, 2016년 8건, 2017년 11건, 2018년 9월 현재 8건으로 증가 추세다. 산재 인정률은 매우 높다. 32건 중 30건(93%)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이 가운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는 7건이었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은 뒤 회사에 문제를 알렸다가 2, 3차 불이익을 입어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성희롱 상담 건수는 느는데 산재 신청 건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 최씨는 “실명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고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하는 사례도 적은데다, 성희롱 인한 피해를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성희롱을 산업재해의 유형으로 명시하자는 법 개정 움직임이 있지만 현안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씨는 산업 변화에 따라 산재 범위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업무상 질병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여성이 많이 종사하는 이른바 ‘여성 직종’에서 발생하는 업무상 질병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조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최근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처하는 위험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성인지 관점의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직종별 여성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캐나다 등 해외 사례를 살펴보고 정부 차원의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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