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화경] (끝)

커피콩. ⓒpixabay
커피콩. ⓒpixabay

“빨간약을 먹으면 이 세계에 남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넌 네가 사는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파란약과 빨간약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 여기서 빨간약을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는 의미다. 네오는 빨간약을 선택한다. 이 영화에서는 왜 하필 빨간약을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약으로 설정했을까?

『커피견문록』을 쓴 스튜어트 리 앨런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빨갛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빨간 커피 열매를 연상시키는 선악과를 통해 스튜어트는 커피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에티오피아의 소년 칼디도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날뛰는 염소를 목격했고 아라비아의 오마르도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새들의 안내로 빨간 열매 즉 커피를 발견한다.

이처럼 아담부터 오마르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는 누군가에게 유혹당하거나 인도를 받았다. 아담은 뱀에게 유혹당했다. 칼디는 염소, 오마르는 산새의 인도를 받는다(‘매트릭스’ 네오는 모피어스의 안내를 받았다). 다시 말해 빨간 열매는 뭔가에 대한 심오한 상징이거나 정말로 비밀의 열매였을지도 모른다. 선악과와 선과 악을 알게 해주는 열매라니…각성하게 해주는 열매 아닌가. 따라서 ‘선악과가 혹시 커피가 아니었을까?’라는 스튜어트의 가설은 꽤 설득력이 있다.

종교를 떠나 선악과가 커피 열매였든 아니든, 그것은 태초에 존재했고 그 열매를 먹은 인간은 각성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비엔스』를 쓴 이스라엘 작가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류는 ‘이야기’를 통해 발전했다. 게다가 지난 역사가 말해주듯이 인류가 커피를 마시면서 인간 세상은 풍요로워졌으며 예술과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반면, 동시에 욕망도 함께 커져 부작용이 컸지만 말이다. 아마도 창조주는 일찌감치 욕망을 좇는 인간의 폭주를 우려해 선악과를 금지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커피로 깨어나면서 근대 사회로 진입한 인간은 현재 풍요를 넘어 폭주의 양상을 보인다. 과거 유럽이 커피 무역의 주도권을 쥐면서 내보인 자원 수탈의 야욕은 신자유주의로 탈바꿈하여 여전히 커피 생산자들을 옥죄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커피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우린 빨간약을 선택했고 다시 파란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세계를 바로 잡을 방법은 균형을 찾는 것이다.

‘매트릭스’는 바로 이런 균형 잡기를 말하고 있다. 이미 거대 식량 자본에 의해 커피의 수급은 조절되고 있다. 가격에 생산자의 입장은 반영되고 있지 않다. 이렇게 너무도 멀리 가버린 커피의 세계를 이제는 바로 잡을 때가 됐다. 커피는 지구의 균형을 조절하는 비밀의 열매이자 영겁회귀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인류와 문명이 시작된 아프리카. 커피가 발견된 아프리카.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다. 현재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대를 이은 가난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커피는 영혼의 에너지란 말이 있다. 그런데 자본과 산업의 에너지원인 석유를 생산하는 산유국들은 최고의 부를 향유하고 있음에도 영혼의 에너지인 커피생산국의 노동자들은 오늘도 힘겨운 생존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설 속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염소를 치다 빨간 열매와 마주친 소년 칼디가 상상한 미래와 커피를 마시며 밤새워 기도했던 수피교도들이 바라던 세상은 지금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깨어난 사람이라면 커피가 가지고 있는 어둠의 포스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제다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커피 에너지를 정신적 에너지이자 영혼의 비타민으로 승화하여 평화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지구 환경의 균형을 위해 지속가능한 커피 생산이 가능하도록 고민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커피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네오다.

이렇게 커피로 깨어난 사람을 ‘호모 커피엔스’(Homo Coffeens)라고 부르자. 이젠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질 때가 됐다.

*별걸 다 하는 출판사 ‘우주소년’ 대표. 저서로는 『커피는 원래 쓰다』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문학커피를 기획했다.

키워드
#박우현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