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jpg

◀<일러스트·박향미>

“선생님 여성호르몬제를 먹어야 될까요? 말까요?”이런 질문을 받으면 환자의 가슴크기와 체형을 훑어보고 얼굴색과 가슴의 전중혈을 눌러본 다음 무슨 이유로 먹고 싶은지 물어 본다.

대개 얼굴이 달아오르는 홍조와 붉어지는 증상 때문에 괴로워서 먹고 싶은데 상열체질로 가슴이 크고 양유간의 전중혈을 만지면 아프고 답답하며 목덜미가 굵고 얼굴이 동그랗고 잘 붓는 체질은 일단 안 먹는 것이 좋다는 그동안 임상의 경험이다. 이런 여성은 약 먹으면 가슴이 더 빵빵해지고 살도 찔 가능성이 있으며 덩달아 혹시 암세포라도 있으면 자극되어 증식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자궁과 난소를 일찍 들어냈거나 5년 이상 조기폐경이 된 경우 또 얼굴과 가슴이 마르고 납작하며 홍조가 유난히 심한 경우엔 적은 용량으로 길지 않은 기간 조심스럽게 먹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여성호르몬제는 박스 경고문과 함께

작년 초 제약회사 임원으로 있는 동창이랑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야! 여성호르몬 먹는다고 약해진 뼈가 튼튼해지는 것도 아니고 칼슘이 빠져나가는 것을 좀 억제한다는 거지 골다공증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잖아?”

“호르몬제는 처음에 골다공증보다 심장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개발됐어…”라는 어색한 답변과 함께 우리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토론을 했다.

몇 달 후에 미국국립보건연구원에서 복합 호르몬요법을 받는 폐경여성은 유방암과 혈관 내에 피떡이라는 혈전생성을 증가시켜 심장발작과 뇌졸중의 위험이 오히려 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제약회사가 여성호르몬이 암발생을 20%정도 더 높여주는 것을 인정하고 뒷감당이 안되니 자백을 했으며 회사의 주식이 폭락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보건당국은 1만6천명의 여성에게 8년 동안 임상시험을 하기로 한 것을 5년 만에 중단하고 대상자들에게 더 이상 호르몬을 복용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여성건강과 관련된 금세기 최고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미국보건당국은 호르몬제를 유방암의 직접원인이라고 보고 발암물질목록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여성호르몬제를 함유한 약품은 담배처럼 박스형으로 된 경고 문구를 써넣고 유통시키도록 법조항이 바뀌었고 가능하면 최단 기간 내에 최저 용량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여성호르몬제의 복합치료가 만병통치처럼 완경기의 여성에게 유행붐을 타기 시작한 건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강남에서 부터였다. 내가 아는 압구정동의 사모님.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고 건강해 아픈데도 별로 없으며 취미로 골프나 즐기면서 여유롭게 살았다. 찜찜한 건 월경이 끝나서 허전한 것 뿐. 월경을 하지 않으면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장나서 단물 쪽 빠진 껌딱지 신세가 될 것이라고 세상이 엄청 겁을 줘왔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약 먹는 것도 유행심리

그래서 홍조도 사라지고 기억력도 좋아지고 달마다 생리도 돌아오고 심장병도 걸리지 않고 이것도 저것도 다 좋아져서 젊게 산다고 하는 말만 믿고 여성호르몬을 먹었다. 그동안 혹시 유방암이 생기지나 않을까 해서 젖을 아프게 짜부려 눌러 짜며 찍는 유방조영술도 6개월마다 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3년 복용 후에 유방암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다. 그 후엔 호르몬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게 하는 약을 무려 5년이나 먹으라고 했단다. 그럼 3년 동안 호르몬을 먹으랬다가 이제는 반대로 5년 간 여성호르몬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게 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니 병 주고 약 주고 기가 찰 일이다.

미리 발견하면 될게 아니냐고? 젖은 원래 우툴두툴한 지방조직과 분비선들이 많아서 콩알만해져야 찾아내지 작을 땐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 아니우. 암덩어리 1그램이면 벌써 암세포는 10억개나 되니 어찌됐든 암은 이미 생겨버린 셈이니 수술이냐 항암제냐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통계란 냉정한 것이다.

수백 명중의 한사람에게 일어날 확률이 나한테는 100%의 불행한 사건이 된다. 나라면 친구들이나 환자들에게 암을 유발할지도 모르는 호르몬제 대신 홍조와 완경과 자연스런 나이듦을 선택하고 이제야 말로 약물이 아닌 음식조절과 운동 등 〈몸 돌보기 지혜프로그램〉을 가동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유명호/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남강한의원장, 건강교육가

몸을 살리는 다이어트 자습서〈살에게 말을 걸어봐〉저자02-719-4231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