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제도 문제가 커

인력부족‧인계시스템이 원인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고질적인 간호계의 ‘태움 문화’가 그렇다. 현직 간호사들 사이에서 법으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법 자체가 실제로 와 닿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간호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조직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태움이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을 뜻하는 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간호사들이 꼽은 사례에는 ‘고함을 치거나 폭언하는 경우’, ‘본인에 대한 험담이나 안 좋은 소문’, ‘일과 관련해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가 되는 경우’ 등이 있다.

현직 간호사 A씨는 최근 선배 간호사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그는 “리포트를 써오라고 해서 써갔더니 ‘야 너 X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어디서 잔머리를 굴려?’라며 면박을 줬다”며 “물론 수간호사나 간호부에 말하면 의견 반영을 해주겠지만 말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로테이션해도 사직하지 않은 이상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현직 간호사 B씨는 태움에 대해 사내에서 상담했지만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됐다. B씨는 “최근 동기 두 명이 중간 연차 선배한테 심하게 태움 당해서 간호부에서 조치를 취했고 그 선배도 미안하다고 울었다”며 “그러나 이후 회식 자리에서 그 선배 무리가 동기들을 보고 ‘쟤네 주머니에 녹음기 있는 것 아니야?’ 이러면서 비웃더라”라고 했다.

앞서 언급된 태움 사례들은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예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매뉴얼에는 △근로계약서 등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허드렛일만 시키거나 일을 거의 주지 않음,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림, △신체적인 위협이나 폭력을 가함, △욕설이나 위협적인 말을 함, △다른 사람들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함 등이 나열돼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지난해 2월 발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통해 국내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실태를 파악했다. 조사 결과 간호사 10명 중 7명이 근로기준관련 인권침해를 경험했다. 특히 지난 12개월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40.9%였다. 가장 최근에 괴롭힘을 가한 가해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직속상관인 간호사‧프리셉터가 30.2%로 가장 많았다. 이어 동료간호사가 27.1%, 간호부서장이 13.3%, 의사가 8.3%로 직장 내 괴롭힘의 대부분이 병원관계자로부터 발생하고 있었다.

구독자 2만6천명을 보유한 현직 간호사 유튜버 ‘널스맘’은 태움 문화의 원인이 ‘인계시스템과 인력부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호사는 3교대를 통해 연속적으로 일한다”며 “인계과정에서 전 듀티가 일을 끝내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을 때 그 다음 교대자는 앞 교대자의 일을 커버해야 하고 업무과중이 생긴다”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갓 입사한 신규 간호사도 일이 미숙하고 연차가 있는 선배도 업무가 쌓이면서 모두 여유가 없어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업무 인수인계 과정 속에서 태움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또한 “간호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할 환자 수가 너무나 많고 2,3년제 등 학벌에 따라 구조적으로 태움이 양성된다”며 “이를 개인이 아닌 구조·제도적으로 해당 직종에서 면밀히 실태조사를 해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교육 차원으로 질책할 수 있어도 업무와 관련된 지시가 아니라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고 전문가는 조언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업무와 관련된 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며 괴롭힘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몰래 녹음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본인의 목소리가 포함된 대화 과정이어야 한다. 녹음기를 본인과 떨어진 곳에 두고 이동하면 도청으로 간주해 불법 행위가 될 수도 있다”며 “이외에도 육하원칙에 따라 태움 사례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이나 이메일‧메시지 등을 캡처하는 것도 좋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