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중국 쿤밍공항을 통해 윈난성의 차마고도(茶馬古道) 일대, 특히 동티벳의 리장 고성과 샹그릴라 고성과 쑤어 고성과 매리설산, 그리고 루구호와 인근 모서인 마을을 여행했다. 해발 6700미터의 매리설산 만년설과 그 빙하로 시작된 금사강(양쯔강의 최상류)이 티벳고원의 많은 산과 구름과 이루는 자연의 장관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겸허하게 했다. 지배자들의 역사가 아닌 차마고도를 중심으로 노동자 농민들이 살아온 이야기, 특히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풍속과 복장 및 마을과 시장과 가정과 사람과 노동, 그리고 티벳 불교와 토속 신앙들을 잠깐씩이나마 만날 수 있었다.

해발 2609미터의 고원호수 루구호 인근에는 모서인들이 아직도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모서인들은 루구호를 ‘어머니의 호수’라고 부른다. 모계사회의 근간은 ‘결혼제도 없음‘이다. 모계사회가 부계사회에 비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 중 하나가 결혼을 통한 가족중심주의적 관습과 제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결혼제도가 없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해 모서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서인들은 대체로 가장인 할머니(아마)를 중심으로 3대가 한 집안에 모여 확대가족을 이루고 살며, 주로 여성들이 경제적 주도권을 가지면서 공동생산과 공동소유를 한다. 성인(13세 이상)이 된 남녀는 서로 마음을 확인하면, 남자가 밤에 여자의 방(아하방)으로 찾아가 사랑을 나누고, 남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둘 중 누구든 마음이 바뀌면 관계는 끝나며, 뒤끝이 긴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마을공동체 안에서도 못난 사람으로 비난받는다. 그들 관계의 시작과 끝은 오로지 사랑이다. 생애 동안 몇 명의 상대와 성애적 관계를 갖느냐,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가정이나 마을에서 질문되지 않는다. 자녀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고, 어머니의 집에서 할머니와 그 남매들 그리고 어머니와 그 남매들의 양육을 받으며, 이종 남매들과 함께 자란다. 남자든 여자든, 평생 자기가 태어난 집(원가족)에 소속되었다는 정체성으로 살다 죽는다. 사랑하는(던) 여인이 낳은 아기가 자기 자식임을 알게 된 남자가 그 자식에 대해 책임과 애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법적 관습적 의무는 없다. 아이 역시 자기를 태어나게 한 남자를 알 수도 있고 각별한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아저씨 혹은 외삼촌이라는 의미의 ‘아우’라고 부르며 가족 바깥의 남으로 여긴다. 집 근처의 농사 노동은 주로 여자들이 맡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가는 장사 등의 노동은 주로 남자들이 맡는다. 그러다 보니 바깥 세상에 대해 남자들이 더 먼저 많이 알게 되고, 교육의 기회도 남자들에게 더 많다. 시대가 변하고 중국 사회가 급속도로 개방되며 주로 한족 문화를 중심으로 한 제도교육이 확대되면서, 이들 마을과 사람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들의 많은 관심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모서인 혹은 이 모계사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문화혁명 시기 가정과 사회의 질서 및 위생 등을 이유로 이들을 ‘문란’이니 ‘비정상’으로 낙인하고 탄압하면서, 강제로 결혼 중심의 부계사회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모서인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문화와 풍속을 존중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관광 상품으로서의 쓸모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소수민족 문화와 관광 사업이 중국정부로부터 장기간 낮은 이자의 대출을 받은 한족을 사업주로 하고 소수민족들은 공연장의 날품팔이로 전락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다행히 루구호 인근의 모서인들은 마을마다 돌아가면서 마을공동체가 공연을 펼치고 수입도 나누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모서인 출신 여성 문화예술인 양 얼처 나무와 여성 인류학자 크리스틴 매튜가 함께 쓴 『아버지가 없는 나라』를 권한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중국 윈난성 리장의 루구호/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중국 윈난성 리장의 루구호/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중국 윈난성 리장의 루구호 인근의 모서인들이 사는 마을의 한 노인. 모서인들은 대체로 가장인 할머니를 중심으로 3대가 한 집안에 모여 확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윈난성 리장의 루구호 인근의 모서인들이 사는 마을의 한 노인. 모서인들은 대체로 가장인 할머니를 중심으로 3대가 한 집안에 모여 확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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