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시민행동 주최 6차 페미시국광장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과 시민 80여명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행진을 했다. 이들은 “여성의 죽음을 멈춰라”라고 외쳤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과 시민 80여명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행진을 했다. 이들은 “여성의 죽음을 멈춰라”라고 외쳤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2019년 4월17일 이웃 남편에게 여성이 살해당했다”, “여성의 죽음을 멈춰라!”

늦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도심에 불었지만 검찰·경찰개혁 촉구를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뜨겁기만 했다.

3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6차 페미시국광장 집회를 열었다. 미투시민행동은 지난 7월 12일부터 매주 금요일(8월 16일 제외) 같은 장소에서 고 장자연 사건·김학의 사건·버닝썬 사건, 웹하드 카르텔 사건의 본질을 시민에게 알리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페미시국광장을 열고 있다.

6차 집회에서는 ‘다시 쓰는 정의! 검찰·경찰개혁, 여자들이 한다!’라는 주제로 여성이 당하는 폭력을 방치하는 검·경찰과 정부를 규탄했다. 또 고 장자연씨를 술자리에서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전날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에 대해 “무능하다”고 비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국가가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여성의 죽음을 멈추는 분노의 행진!’이라는 주제로 동화면세점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는 행진을 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과 시민 80여명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행진을 했다. 참가자들이 광화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과 시민 80여명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부터 광화문광장을 한 바퀴 도는 행진을 했다. 참가자들이 광화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이날 미투시민행동과 시민 등 80여명은 오후 7시17분께부터 광화문광장 양쪽 한 개 차선을 통해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이었지만 추모의 성격도 띄었다. 참가자들은 연도와 날짜, 사람 이름의 성(姓)이 적힌 영정을 들고 행진을 했다. 미투시민행동이 준비한 팻말로 올해 1월부터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이름 성과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적혀 있었다. 미투시민행동은 올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를 통해서 드러난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들은 최소 73명이라고 했다.

미투시민행동 관계자는 행진 내내 여성 살해 사건이 발생한 연도와 가해자를 외쳤고 참가자들은 그때마다 자리에 멈춰서 “여성의 죽음을 멈춰라”라고 외쳤다.

약 32분간의 행진 이후에는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다시 한 번 비판하고 남성들로부터의 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검찰과 경찰, 사법부 등을 규탄했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편집장 경주 씨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제6차 페미시국광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편집장 경주 씨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제6차 페미시국광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전국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활동가 ‘단비’ 씨는 조희천 전 조선일보 기자 무죄를 받은 것을 언급하며 “진짜 무죄가 나올 줄은 몰랐다. 과거사 재조사를 했던 단 하나의 사건이었다”며 “집행유예는 나올 수 있겠지만 유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죄가 나와서 우리가 넘을 수 없는 권력이 있는 건가 싶어서 암담했다.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인데도 처벌을 하지 않으면 어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고발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도 믿을 수 없다면 서로에게 기대어 가자”라고 했다.

서울 강서·양천 여성의 전화 사무국장 ‘롤라’는 “제가 아는 친구도 가정 폭력 피해를 입었다. 그 친구가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나는 데, 그 친구가 느꼈을 두려움은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고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 경찰을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편집장 경주 씨는 한 남성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집 앞에서 열쇠를 꺼내고 있는데 불쑥 한 남성이 자신의 뒤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주 씨는 자신의 집이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남성은 검은색 모자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나한테 술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내가 죄송하다고 하자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친구한테 도망치듯 전화를 하고 동네를 몇 번이나 돌고 그(남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 집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주 씨는 얼마 후 집에 속옷을 주문한 택배박스가 다 찢어진 채로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경찰과 공권력의 역할이 중요한데 신뢰할 수 있나”라고 했다.

지난해 학과 성평등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사건 신고는 많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경찰 신고를 부담스러워했다고도 했다. 그는 “절차가 길기도 했지만 사법기간의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검찰과 경찰, 사법기관, 정부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 활동가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제6차 페미시국광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매 활동가가 2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제6차 페미시국광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과 수많은 여성들이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과 자신의 트라우마와 고통과 삶을 내던지며 말해 온 폭력과 불평등한 현실의 모습은 ‘예외적인’ 개인이 우연히 겪은 이상한 일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10년을 걸쳐서 고 장자연씨가 사회에 외쳐왔던 문제는 한 여성 목격자가 거짓말을 한 문제로 수많은 남성 언론인, 검찰, 유튜버들이 진흙탕을 만들었다”고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 부소장은 “조국 후보자는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며 조두순을 잘 관리하겠다, 정신질환자를 잘 관리하겠다고 했다. 이게 수많은 세월동안 세상에 들어난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냐”고 반문했다.

마지막 발언은 '오렌지'라는 가명의 한 여성 시민이었다. 지난 4년 동안 가정 폭력과 싸워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가정폭력 당사자의 이야기를 발화시켜보고 싶었다. 제 이야기를 하면서 경찰 수사가 부당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시민은 경찰에 자신이 가정 폭력 당한 것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해당 시민의 정신이 이상하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해자인 남편의 허위신고에 경찰은 자신에게 수갑을 채웠다고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이 시민은 가정법원에서 이혼소송을 하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 동안 개인의 불행, 아내로서 제대로 된 처신하지 못한 개인적 반성으로 치부했다”며 “누구도 경찰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정 폭력 신고율은 1%”라고 했다.

그는 “용기 있는 여성 시민들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오늘, 이 페미시국광장에서 간절히 호소한다. 가정 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이 사건에 주목해 달라. 모성은 찬양하면서 여성은 억압한다. 성 역할에는 차이가 없고 어떤 차별도 없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살 수 있게 저도 끝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고 했다.

미투시민행동의 7차 페미시국광장은 같은 장소에서 8월30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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