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차 윈문화포럼
고미숙 고전 평론가
길 걸으면 사람·사건 만나며
스스로 성장할 기회 생겨
"고전에는 인생에 대한 정보 다 있어"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22일 서울 문정동 한양타워 컨퍼런스홀에서 '길 위에서 길 찾기-고립에서 공감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22일 서울 문정동 한양타워 컨퍼런스홀에서 '길 위에서 길 찾기-고립에서 공감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전 문학 『열하일기』를 읽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청나라에 다녀온 견문록.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읽다보니 여행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길을 걷는 여정이다. 자연스럽게 길(道)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 세계에 있는 여행기 고전을 찾기 시작했다. 각 대륙의 최고의 고전은 여행기였다. 8월 22일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한양타워빌딩에서 열린 제49차 윈(WIN)문화포럼에서 열린 특강의 강연자로 나선 고미숙(60) 고전문학 평론가의 이야기다.

고 평론가는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로 인문학자다. 1990년대 후반 작은 공부방이자 연구 공간인 ‘수유+너머’를 결성했다. 현재는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고전을 통한 인문학 강의를 주로 한다.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작은길),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북드라망) 등의 활발한 저서 활동도 하고 있다.

고 평론가는 “길 위에 있어야 사람과 사건을 만난다. 그러면 생각이 바뀐다”라고 말하며 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강연 제목도 ‘길 위에서 길 찾기-고립에서 공감으로’였다. 그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현장 법사의 『서유기』 속에서 이뤄진 여정을 소개하고 길 위에서 얻은 경험이 어떻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벗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고 평론가는 말했다.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나’가 30대 중반이었는데 60대 조르바를 만나 길벗이 됐다”며 “저는 이걸 읽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삶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동년배와 있으면 경쟁심이 심해지지만 나이 차이가 나면 시기와 질투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22일 서울 문정동 한양타워 컨퍼런스홀에서 '길 위에서 길 찾기-고립에서 공감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8월 22일 서울 문정동 한양타워 컨퍼런스홀에서 '길 위에서 길 찾기-고립에서 공감으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주인공인 10대 소년 헉은 30대 흑인 노예 짐을 만나 미시시피강을 모험한다. 고 평론가는 “다양한 세대가 섞여야 한다. 서로 이해하려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평범한 것들을) 낯설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섞이면 우리 뇌에 새로운 회로가 열린다”라고 말했다.

고 평론가는 ‘감이당’에서 청년과 장년이 한자리에 모이는 강좌와 세미나를 열고 있다. 그는 “20~30대와 40~50대를 친구로 맺어주면 서로 너무 편안해한다. 서로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다. 모든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길벗이 된다”고 했다.

고 평론가는 헉의 모험을 통해 스마트폰에 갇힌 청소년들에게 길을 걸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도 했다. 스스로 모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엄마도, 학교도, 교육부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해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이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면 학생들이 길에 나설 수 없다. 길은 예측 불가한 상황이 펼쳐진다. 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정이고 친구이고 스승”이라고 했다.

『서유기』는 현장 법사와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의 여정을 그렸다. 고 평론가는 ‘탐진치’(욕심·성냄·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길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손오공은 힘은 좋은데 화를 감당하지 못했고 저팔계는 식욕과 성욕이 강했다. 사오정은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며 “길을 떠나지 않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던 거다. 길을 떠나는 게 자신을 해방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22일 문정동 한양타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미숙 고전문학 평론가가 22일 문정동 한양타워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 평론가는 강연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건 자기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내가 서 있는 좌표를 찾는 것”이라며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개별적 정보는 유튜브 등에 많지만 근원적인 정보는 고전에 있다”고 했다.

그는 “내 고민을 해결하는 것보다 왜 우리는 죽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그것에 대한 길은 이미 3000년 전에 고전으로 열려 있다. 그걸 읽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인생에 대한 정보가 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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