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독특한 느낌들은 참으로 재미나다. 하루하루 벌어들이는 매출에 일희일비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비록 많은 돈을 벌진 못하지만 아니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렇게 불경기 속에 계속 적자를 기록하며 가끔은 왜 이 어려운 일을 시작했을까 후회할 때도 많지만 그 보다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살아가는 얘기를 하며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독특한 경험이며 소중한 것인지 직접 겪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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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참으로 즐거웠다. 영국에서 온 모던 발레단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Matthew Bourne’s Swan lake 단원들. 런던에서 이제 막 서울에 도착했으며 공연을 앞두고 이태원에 쇼핑 나왔다가 나와 만나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자. 커밍아웃한 내가 거짓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매튜 본 단원들은 노동자 가정 출신의 어린 소년이 자신 안에 있는 발레의 열정과 재능을 발견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빌리 앨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성인 발레리노로 성장한 빌리가 깃털이 달린 바지를 입고 무대 위에서 높이 점프하는 장면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매튜 본이 새롭게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의 한 컷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이들을 5월 20일부터 6월 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남자 무용수들이 백조 역할을 해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기 때문에 동성애 코드가 강하다는 평도 받고 있다. 글쎄, 무용수들 중 많은 수가 원래 게이이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듣는 건 아닌지. 하하.

사실 난 그 친구들을 이태원의 게이바에서 처음 만났다. 나와 절친한 게이바 사장은 하루종일 <백주의 호수> 공연 얘기를 할 정도로 내겐 참으로 기다려지는 공연이다. 그 댄서 친구들에게 한번은 게이바에 나오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했었는데 저녁 무렵 정말 몇몇 댄서들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선물로 가져간 딸기 케이크와 샴페인 덕분에 그걸 나눠 먹으면서 우린 곧 친해질 수 있었다. 딸기 케이크와 샴페인이 내 작전 도구였는데 그게 잘 먹혔나보다. 헤헤. 우린 많은 얘기들을 나눴고 늦도록 춤을 추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는 내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업이 끝난 시간이어서 주방에 들어간 급조한 안주들과 맛난 와인 그리고 야외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새벽공기가 한층 분위기를 돋궈준다. 물론 음악이 빠질 순 없겠지.

난 조지 마이클을 선택했다. 영국에서 온 친구들이니까 당연히 좋아하리라 예상했었지만 기대이상으로 행복해 했다. 큰 소리로 같이 노래하며 웃고 떠드는 사이 런던과 서울이라는 긴 거리(인종, 문화의 벽)가 깨지고 말았다.

친구들은 “서울이라는 곳에 처음 온 긴장감이 다 없어졌다”며 이렇게 편하고 예쁜 장소를 알게 해 줘서 고맙단다. 결국 다음 저녁에 다시 내 가게에 와서 또 한번의 와인파티를 하게 됐다. 물론 이번엔 맛난 음식과 함께 말이다.

서비스가 얼마나 나갔는지 모르지만 그런 건 다 젖혀두고, 난 또 하나의 멋진 친구들을 얻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내가 레스토랑을 열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멋진 녀석들을 만날 수 있으랴. 나와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다 우리 가게로 모여라. 술과 음식과 음악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물론 돈을 내셔야 되요. 하하. 이번 주말에는 백조의 호수에 푹 빠져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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