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이 주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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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폭력 장면을 보지 못하는 심성과 영화적 취향을 아는 지인들로부터 내가 보기에 무난한 영화일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영화의 소재나 장면이 주는 불쾌감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한 오산이었고, 보고 나서 막심한 후회를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 나서 밤잠을 설친 그 다음 날까지 영화의 장면들이 악몽처럼 자꾸만 떠올라 기분이 영 복잡하고 괴로웠다. 이 복잡 미묘한 심사의 정체는 내가 ‘거리두기’를 할 수 없었다는 점,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지난 수년간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성폭력 피해자를 예술 텍스트로?

이 영화가 내게 불러일으킨 가장 즉각적인 반응은 아픔이었다. 그것은 정신적인 차원의 아픔만이 아니라 몸으로 감지되는 물리적인 아픔이기도 했다. 연쇄 살인범이 희생자에게 저질렀던 잔인한 고문 행위들 중에는 성폭력 상담 과정에서 피해자들로부터 들었던 것들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들’은 영화 속 생존자처럼 극심한 공포감과 후유증을 보이는 전형적인 피해자이기 보다는 상처와 함께 그것을 견디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영화 속 어떤 장면 이후로 계속 ‘그녀들’이 떠올랐다. ‘그녀들’의 몸과 영혼이 감당해야 했던(하고 있는) 현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내가 이 영화를 하나의 예술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관객들 속에서 함께 소리지르고 웃으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꾸만 ‘그녀들’이 감당해야 했던 처절하고 잔혹한 공포와 아픔, 그리고 지금도 견뎌내야 하는 고통을 ‘추억’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일상으로까지 지속된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해서 평소엔 잘 모르다가, 어떤 자극을 계기로 그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는, 하지만 평생 면역력이 생길 것 같지 않은 두려움. 좌석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신경 쓰여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밤길에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게 되거나, 뒤에서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는… 이 땅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 30대 중반을 넘어선 뒤로 한동안 그저 불편함 정도로만 여기는 듯 했으나, 영화를 본 이후로 그것은 다시 생생히 되살아 왔다.

나에겐 피가 튀고, 잔혹한 장면이 이어지는 양식화된 공포 영화보다 이 영화가 훨씬 더 무섭다. 영화 속 얼굴 없는 범인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나 골라잡아 죽이는 것처럼, 불특정 다수가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현실, ‘또라이, 변태, 흉악범’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보통 남자’-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건, 페티시즘적 자위 행위에 몰두하는 30대 평범하고 모범적인 가장이건 - 가 (잠재적) 가해자로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공포 영화보다 더 무섭다. 이 잔혹한 범죄의 희생자들이 느꼈을 끔찍한 공포와 아픔은 내 앞에 놓여있는 대상화된 그 무엇이 아니다. 피해자들과 동일한 종류의 피해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은 ‘모든 여성’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하며, 모든 (잠재적)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드니까.

“잘 만든 훌륭한 영화다”, “완성도가 뛰어나다”, “80년대를 잘 표현했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보내는 찬사를 나는 보낼 수 없다. 나에겐 이 영화가 지난 역사 속 풍경화나 알레고리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상황들이 내 삶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고, 현재 내가 처한 삶의 조건이자 내게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형사들의 회식자리, 룸싸롱에서 옆에 여자를 앉히고 여자의 몸을 고깃덩어리 주무르듯 주무르는 장면, 고등학교 나온 형사가 자신의 열등감과 일상의 고단함을 어느 여대생에게 폭력으로 투사하는 장면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희생자로 선택하는 범인의 이미지와 겹쳐져서 묘한 연민과 무력감, 분노를 함께 느끼게 했다.

보통남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실

얼굴 없는 범인과 영화 속 남자들의 이미지는 그 폭력의 대상이 단지 ‘여성’이라는 레테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외에는 없어 보인다. 그 장면들 속에서 ‘여성’은 사회 부조리가 빚어내는 남성의 열등감과 좌절감, 피해 의식을 위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희생양으로 소비되고 있었고, 그것은 내가 생존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폭력적인 영화 이미지에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그러한 이미지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런 시선과 욕망이 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예쁘고 세련된 여대생을 무심코 쳐다보다가 내가 영화 속 범인의 시선으로, 고졸 형사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소스라친다. 나도 모르게 범인과 고졸 형사가 가졌을, 이유를 알 수 없는 피해 의식, 지배의 욕망들이 얽힌 정복자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폭력적이고 사악한 욕망과 시선이 내게 너무도 일상적인, 자연스러운 나 자신의 일부가 굳어 버릴 것 같아 두렵고도 또 두렵다.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성찰하고 다스리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의 몫일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기 안의 폭력성을 감지하고 그것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 주말에는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혼탁해진 몸과 마음을 정화해야겠다.

권수현/ 전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 상담소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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