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무원의 성인지 감수성
[기고] 공무원의 성인지 감수성
  •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
  • 승인 2019.08.23 08:35
  • 수정 2019-08-23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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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겪으며 여성들은 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여성들은 젠더 이슈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구해왔다.

실제로 지난 7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가 개설된 이래, 20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청와대가 답변한 청원의 40%(98개 중 39개)가 젠더 관련 이슈로 나타났다. 젠더 이슈가 지난 2년 동안 한국 사회의 핵심 현안이자 국민적 관심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젠더 이슈 국민청원 중 여성 폭력·안전 이슈가 무려 63%(141개)로 가장 많았다. 이 중 형사사건의 올바른 해결 촉구가 54.6%로 나타나 여성 폭력 범죄를 다루는 수사·사법 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컸다. 대표적으로 “故 장자연씨 재수사”는 64만 명, “버닝썬 클럽 관련 경찰 유착 수사”는 총 52만 명이 참여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3년 동안 여성들은 한국 사회를 바꾸자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외침에 시끄럽다고, 지겹다고, 피곤하다고 귀를 막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막상 귀를 막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바뀌었냐?”고 질문한다면 말문이 막혀서 대답하지 못한다. 친밀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고,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에 유통될까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에 부딪히고, 자식에게 ‘엄창’이라는 소리를 듣는 여성들. 아무리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왜 한국 사회의 변화는 이토록 더딘가? 어떻게 해야 강고한 가부장제와 성차별 문화가 바뀔까? 많은 이들이 제시하는 해법이 바로 성평등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이론을 배우고 사례를 접하면서 젠더권력관계를 이해하고, 사회를 해석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나아가 스스로 변화하고, 함께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찰대학이 실시한 성평등 교육 시간에 경찰총경 및 공공기관 임원 승진 예정자들이 강의실을 이탈하고 수업을 거부했다는 폭로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젠더기반폭력의 실상과 국민들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사건이다. 심지어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고, 현 정부는 성평등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정부를 움직이는 이들은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이면서 정책의 집행 주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진 공무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들은 이미 2018년 1월에 초중고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청원했다. 다행히 올 6월부터 공무원들에게도 성인지 교육이 의무화되었다. 1999년에 4대폭력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후 20년 만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역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성희롱, 성매매, 가정폭력, 성폭력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적인 대상, 소유물, 열등한 존재로 보는 데 기인한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4대폭력은 자연히 예방된다. 4대폭력 예방교육이 현상에 대한 교육이라면 성인지 교육은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교육인 것이다.

성인지 교육이 ‘의무’라는 것은 이제 성인지 감수성이 부담이나 강제가 아니라 필수이자 기본인 세상이라는 뜻이다. 공무원들의 성인지 교육 의무화 소식을 접한 국민들이 크게 환영하며 가시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공무원이 국민들을 앞서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국민들과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이다.

김고연주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젠더자문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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