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

35명 선발해 6개월 간 집중 교육
경선 통과한 후보에게 기본소득 제공

김혜미·이정현·꽃부농모자 인터뷰
“설칠 여성들이 이렇게 많구나”

“우리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
기성 정당에 영향 미칠 것

‘녹색당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에 참가한 여성들. 20~30대가 중심으로 정치와 정당 경험이 처음인 이들이 많다. / 녹색당
‘녹색당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에 참가한 여성들. 20~30대가 중심으로 정치와 정당 경험이 처음인 이들이 많다./ 녹색당

 

‘정치판부터 바꿔야 한다’고 누구나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바꾸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를 통해 사회 변화를 꿈꾸는 20~30대 여성들 수십명이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주축이었던 50대 이상의 남성이 아닌 청년 여성들이 나서야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는 이들이다.

현실정치의 입구를 찾던 이들에게 손내민 정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녹색당이다. 선거 1년 앞둔 지난 4월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서 정의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한 신지예, 제주 난개발 반대에 앞장 선 제주도지사 후보 고은영과 같은 여성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이들의 도전이 청년여성 정치라는 길에 이정표가 된 셈이다.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신지예·고은영의 평소 지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원이 아닌 시민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를 연 녹색당은 선거에 임박해서 후보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녹색당을 대표할 정치인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가는 대장정이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자에게는 기본소득도 지원한다.

프로젝트에는 35명이 참가하고 있다. 대다수가 20~30대로, 일반 회사 직장인이나 예술가, 사회복지사, 기자 등 다양하다. 정당 활동이 처음이라는 참가자들이 더 많다. 직장에서 퇴근 후 모임에 꼬박꼬박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참가자들은 같은 비전과 목표를 가진 이들이 만나 서로를 격려하는 그 자체로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앞에 나서서 말하고, 정책을 만들고, 정당이 어떻게 구성되고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도 경험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프로젝트 참가자들 모두 우리네들의 삶과 동떨어진 인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특별한 점은 각자가 치열하게 일터에서 가정에서 살고 있고 삶 속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정치를 통해 풀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출마를 하든, 아니면 선거를 기획하든 문제를 직접 바꾸고자하는 용기에 감탄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이면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혜미(25) 씨는 “시민사회에서 정책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정책을 만들어보고 싶어 참가했다”고 밝혔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꽃부농모자(별명, 29)씨에게 정치란 “서른살이라는 나이에 사회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일, 인생을 걸고 해보고 싶은 일이다. 당에 후원만 하지 말고 참여해보자 싶었다”고 했다. “내가 국회 들어가지 않더라도 정당 활동을 한 번도 안했던 평범한 회사원이 정치교육을 받고 교육과정 통해 진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 모습, 도전하는 젊은 청년 여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체가 사회메시지가 된다는 생각에 나섰다”고 했다.

IT업계에 근무하는 30대 이정현씨는 “제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당연한 가치들이 사회에서 홀대받거나 혐오로 속상하고 항상 화가 나 있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미디어와 사회에서 고착화된 여성의 이미지와 역할, 고기를 과다 소비하는데도 끊임없이 고기 권하는 사회, 열대야 속에서도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에어컨 구매로 해결하는 풍토 등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주제들을 공론화시키고, 행동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법제화, 그리고 그에 맞는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하 이들과 일문일답.

‘녹색당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에 참가한 여성들. 20~30대가 중심으로 정치와 정당 경험이 처음인 이들이 많다. / 녹색당
녹색당 2020 여성 출마 프로젝트 참가자 중 김혜미씨가 속한 팀의 팀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김건우·김혜미·최유라·이가진·김현정·윤민지 씨 / 녹색당

프로젝트가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나?

혜미= 설칠 여성들이 이렇게 많구나. 여성들의 목소리가 억압돼왔고 미투는 이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데, 정치판 가서 썩은 정치를 바꾸자는 여성들 많이 만났다. IT, 예술 등 직군이 다양하다. 이런 분들이 곳곳에 있으니 사회가 정말 변하겠구나, 기대가 된다. 여성들 안에도 우리도 목소리 낼 수 있고 마이크 잡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여자라서 할 수 있다’라기 보다 똑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채워나가는게 중요하다.

모자= 경험없는 사람이 뭘 하냐고 하는데, 지금 들어가도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는 팀플레이다. 정치인은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정책, 법 제도 풀어내는 건 전문가의 영역인데 녹색당 팀원들과 해결해낼 수 있다. 당 안에 수많은 전문가가 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문제의식이다.

정현= 팀을 이뤄 함께했던 동료들,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다른 팀원들을 보며 특히나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그 곳에 가면 받는 ‘된다’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좋아 야근을 하고 회사에서 밤을 세웠더라도 무조건 참여했다.

만들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모자= 다양한 소수자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특히 동물권법을 발의하고 싶다. 지금은 동물보호법이 전부다. 동물의 권리까지 보호하는 사회는 소수자의 권리를 당연히 끌어안는 사회다.”

혜미= 사회복지정책이 가족 중심으로 수립돼 있다. 법적 가족, 국가 인정 가족들만 이야기하고, 그 외에는 온전치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생활동반자법이 중요하고 부양의무제 폐지도 이뤄내야 한다.

미투운동은 여성들의 정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혜미=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말할 수 있는 권력을 가져야 함을 가르쳐주었다. 목소리 내는 과정을 통해서 정치 참여를 인식했다. 말할 수 있는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미투 운동과, 이후 각종 여성 집회를 경험한 이후 ‘내가 말을 안하고 있었구나’ 자각한 분도 있었다”

원내 정당이 아닌 녹색당에서 정치인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모자= 청년정치인의 비전을 가지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당내 권력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렇다 보면 자기 색깔을 잃는다, 그게 진입장벽이다. 오히려 더 빠른 길이라 생각한다. 정당정치라서 문제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정당정치를 하고 싶다. 기성 정당에도 영향을 미칠 거다. 개인적으로는 당선 가능성도 있다고 봐서 들어왔다. 정치인을 꿈꾸는 이상 당선이 목표다. 다만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혜미= 정치인이 돼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만 녹색당에서 하고 싶다. 55세 남성이 과잉대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 판을 흔들려면 대안 정치를 해야 하는데, 기존 정당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내가 한 선택이 무모해 보이지만 현실가능성이 있다.

정현= 나이 많고 경험있고 학벌 좋은 사람들이 만든 이 사회, 전혀 이상적이지 않다. 살기 팍팍하고 정치에 대한 혐오만 증폭시켰다. 내 맘과 같은 사람들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문제들에 대해 진짜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는 걸 안다면, 더 이상 ‘아재정치’와 결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면, 그래서 정치가 내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면 변화는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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