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울적아』 안나 워커 글·그림
우울한 감정이 어떤 식으로
자리 잡는지 섬세하게 그려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평소 좋아하는 양말을 찾지 못하고, 우유를 엎지른다면 어떨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리얼까지 퉁퉁 불어버린다면? 더구나 비 맞는 건 딱 질색인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한다면?

그림책 『안녕, 울적아』의 주인공 남자아이 빌은 하루 종일 머피의 법칙을 통째로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회색빛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이는 상황을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려서 해석하여 현실보다 더 파국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파국적인 사고패턴을 떠올려준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울증을 불러들이기 쉬운데, 거대한 먹구름처럼 생긴 울적이가 빌 앞에 나타난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빌이 울적이를 피해 도망갈수록 점점 커지는 울적이는 한없이 가라앉는 빌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빌이 울적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커다란 울적이가 훌쩍훌쩍 우는 장면은, 빌의 마음 속에 있는 우울이 현실보다도 더 가깝게 빌에게 밀착되어 있는 감정임을 전해준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취약하다고 여겨져 왔다. 호르몬 조절 실패로 인한 증상으로 낙인찍힌 여성의 우울증은, 산후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그 이름도 다양한데, 이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적이어서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폄훼되어 온 주요 근거가 되어 왔다.

하지만 심리학자 로빈 스타인 델루카는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감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은 태곳적 관념이라고 일축한다. 그 오래된 신화와 같은 낡은 관념들이 여성을 출산과 관련된 생물학적인 대상으로만 규정하며 여성들의 운신의 폭을 좁혀온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그렇다. 여성의 우울증은 생물학적인 우울증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우울증이다. 세상이 원하는 착하고 순종적인 딸, 아내, 엄마 역할을 하기 위해 정작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마음 깊숙이 묻어버린 탓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부장제 사회가 씌어놓은 ‘여성스러움’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마음 속 목소리를 점점 잃어버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빌이 울적이의 눈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은 깊은 감동을 준다. 빌이 더 이상 우울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장면이기에 그러하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할 때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삶의 역설을, 상징적으로 경험하는 장면은 아닐는지.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세상은 잠시 숨죽인 듯 고요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눈에 비늘이 떨어져 눈이 밝아진 현인처럼, 마침내 빌은 울적이의 손을 잡아준다. 그러고는 함께 물웅덩이를 건넌다. 그동안 빌의 마음에서 흘러내렸던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것 같은 작은 물웅덩이를.

그러자 오후 햇살을 받은 길거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 개는 멍멍 짖어 대고 빌도 웃음을 짓는다. 동시에 울적이가 변하기 시작한다. 점점 크기도 작아지고 투명해지는데, 아침에 빌을 따라다녔던 진한 먹구름 같은 울적이가 아니다.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안녕, 울적아ⓒ안나 워커, 모래알

 

다음 날 아침 빌은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본다. 그림책의 첫 장면처럼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그런데 어제와 다른 점은, 빌의 눈에 곧 해가 날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놀라운 사실은, 울적이가 작은 인형만한 크기가 되어 침대 위에 편안하게 누워있다는 것!

우울증을 흔히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마음 속 어둔 터널에 비유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과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터널 속에서 절망하고 숨고 싶어 하지, 우울의 감정과 대면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회피할수록 그 감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다. 빌에게 나타난 울적이처럼!

작가 안나 워커는 우울할 때 그린 낙서가 그림책의 모티브가 되어주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안녕, 울적아』가 탄생하기까지의 창작 과정 자체가, 우울의 터널을 걸어가는 감정의 연금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연금술이 여성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울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보듬어줄 때, 우울이 기쁨으로 변화하는 연금술을 그림책 『안녕, 울적아』는 이야기하고 있다.

 

윤정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작가다. 독서치료사로서 10년 넘게 그림책 치유워크숍 활동을 해오고 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화예술 비평 작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주요 저서로는 『조금 다르면 어때?』 『팝콘 먹는 페미니즘』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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