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우분투 정신은
한국서 가능한가?
내신 등급제 아래서는
‘모두 잘되자’ 이상은 상상 불가

 

선착순 달리기 게임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달려 다함께 보상으로 달콤한 과일을 얻었다는 우분투에 관한 미담은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인용 출처가 불명확하다. 검색의 끝에는 리아 디스킨이라는 브라질 사회운동가의 연설에서 등장했다고 하지만, 그도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밝히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야기는 ‘어느’ 인류학자가 ‘어떤’ 아프리카 지역에서, 라고 시작한다. ‘옛날옛적에 한 고을에는’ 이라고 시작하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우분투 미담이 공유될 때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이 이야기의 출처나 진위가 아닐 것이다. 우분투 미담은 공존이 위협받는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결핍과 욕망을 반영한다. 아프리카 연구자 김광수에 따르면 우분투는 ‘한 개인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인간이 된다’는 뜻으로 사하라 이남 지역과 서아프리카 등 아프리카 전지역에서 공유된 인간성에 관한 정신이다. 한국 언론 등에서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종종 10대들은 교실에서 ‘당신이 있으면 내가 없어집니다’의 상황을 경험한다. 타인의 점수가 내 등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나와 동점인, 또는 나보다 0.1점이라도 잘 본 사람에 의해 내 등급이 낮아질 수 있다. 만점자가 응시 인원의 4%가 넘으면 100점을 맞아도 2등급이 된다. 하나만 틀려도 3등급이 될 수 있다. 시험을 변별력 없이 냈다며 교사는 교장실로 불려간다. 공동우승의 가능성 자체가 삭제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원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 잘되자’라는 안일한 이상조차 상상 불가능이다. 현재의 내신 등급제에서 모두 잘되면 모두 망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란히 손을 잡고 달려 모두 100점을 맞으면, 모두 9등급이 된다. 이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1등급 커트라인을 알기 위해 점수를 조사하러 다니는 사란 보는 건 흔한 일이라고 청소년들은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만 잘되면 돼’는 분노나 질타의 대상이기 보다는 공감의 문구이다. 청소년 연구자가 수집한 사례는 이를 잘 드러내준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장기적으로 수시전형에 도움이 될 독서동아리 모집을 다른 사람들이 참가할 수 없도록 비공개로 진행하길 교사에게 부탁했다. 연구자가 놀란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일에 대한 또래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모두다 잘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불공정에 대해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근데 나라도 그럴 것 같아’라고 공존 불가능에 대해 진지하게 공감하는 태도가 그를 괴롭혔다.

표면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말해지는 것 보다는 무엇에 공감하느냐가 해당 사회의 도덕을 더 잘 드러낸다. 성희롱, 성추행이 엄연한 범죄이지만,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로 용인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회는 표면적으로는 공존을 말하지만, 심층적으로는 공존 불가능에 공감하는 사회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사람이 된다’는 우분투 정신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거의 잃어버린 사회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고도로 복잡한 문제들과 예측불가능성이 상존한 미래 사회는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2050년을 살아갈 인류에게 필요한 주요 역량 중 하나로 협력을 꼽았다. 하지만 여러 연구가 나타내주듯이 상대평가와 협력은 양립하기 어렵다. 협력의 핵심은 다양한 시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상대평가라는 비교에 의한 등급제는 다양한 아이디어의 공존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지의 한국인들은 이 양립 불가능성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조별과제를 내주고 상대평가하는 최악의 조합이 등장한 것이 그 증거이다. 학점이라는 높은 부담 아래 고도의 분업기술을 요구하는 조별과제라는 세팅은 협력을 혐오하고 타인을 기피하게 만드는 주요 경험을 구성한다.흥미로운 것은 교육 전역이 상대평가로 포화되어 가는 반면, 마이크로 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은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완벽하게 종속되는 무력한 존재는 아니다. 매주 토요일 연구모임, 목요일 북클럽, 페미니즘 토론 동아리 등 경쟁과 평가에서 자유로운 공간을 10대들은 찾아 나선다. 불쑥 불쑥 생겨나고, 지속되고, 때로 사라지는 게릴라 공간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와 집을 벗어난 제 3의 공간은 공존에 대한 가능성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적극적으로 다 같이 놀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 발견했어요.” 청소년 연구 모임에 참여하는 10대의 말에서 가능성의 가능성을 엿본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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