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관 합동 기획단이 구성되면서 호주제 폐지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맞서 유림측도 집회와 인터넷을 통해 보다 더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별 없이 정부가 나서 ‘성간, 세대간 대립을 초래한다’며 기획단의 구성과 활동을 비난하고 여성·시민단체에 대해서도 ‘능력과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무모하게 운동을 전개한다,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지나친 액션을 취한다’며 우리의 순수한 권리 찾기 노력을 왜곡, 폄하, 모욕하고 있다. 이러한 공격은 호주제 폐지운동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 그리고 기득권 유지의 집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난 수 십 년 간 가부장적 호주제는 우리 여성에게는 풀지 못할 족쇄였고 남성들 역시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굴레였다. 호주제는 우리의 관습과 관례 및 의식구조를 지배해 왔고 우리의 생활 양식과 가치관 역시, 호주제에 맞추어지고 길들여져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호주제 폐지 운동은 약칭 ‘호폐연’이라는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가 결성되면서 범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국민의 뜻을 결집할 범정부적, 범시민적 기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호주제 폐지 민·관 특별 기획단인 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 등의 일정을 고려할 때 호주제 폐지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특별한 예단과 대책이 필요했다. 더구나 관행화된 행동 양식과 제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 습성을 고려할 때 정부와 민간단체의 조직적이고 유기적인 협조체제의 구축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또 호주제 폐지가 단지 어떤 의식이나 관례의 개혁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의 개선, 행정 시스템의 정비문제와 맞물려 있는 만큼 그러한 기구의 설치는 당연한 것이다.

호주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당면 과제이다. 호주제 폐지 특별 기획단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만큼, 호주제 폐지와 그 대안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넓혀 가며 다양한 입장을 조율·조정해야 할 것이다. 또 기획단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호주제 폐지가 큰 혼란 없이 조속히 매듭지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 유림측도 소모적인 갈등과 투쟁을 접고 기획단에 적극 참여해 이성적인 의견을 개진해 줄 책임이 있다. 밖에서 얼토당토 않는 주장과 구호를 외치며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호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호주제 폐지의 주장이 가정의 해체를 부추기거나 근친혼을 조장하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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