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여성이라서 당하는 황당한 일이 종종 있다. 젊은 여성들은 특히 그렇다. 나는 서른 살 즈음 유학에서 돌아와 첫 학회발표를 했을 때 당한 일을 잊을 수가 없다. 1980년대 중반 한국심리학회가 ‘사회심리학의 전개와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거기서 나는 성역할 분야를 발표했다. 학회에 젠더 연구의 시각을 처음 소개하는 발표라 책임감도 느꼈고 나로서는 학회에 처음 데뷔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최선을 다해 논문을 쓰고 발표를 했다.

질의토론 시간에 청중석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더니 “그런데 발표자는 결혼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좌중에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그는 성역할 분야에 대해 완전 문외한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대충 하나 하고 앉았다. 젠더 연구라는 낯선 분야와 젊은 여성 발표자를 동시에 폄훼하려는 성차별적 의도가 명백했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러는 질문자는 결혼하셨습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페미니스트로 살아서 결혼이나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관심은 사양합니다. 너나 잘 하세요. 그리고 그런 무례한 말을 질문이라고 해서 학회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려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는 자중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어렸고 미숙했고 낯선 환경에 처음 들어가서 게임의 룰을 몰랐다. 그래서 앞의 질문은 건너뛰고, 젠더 연구의 시각이 왜 심리학의 발전에 꼭 필요한가만 진지하게 한 번 더 역설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야비한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속상했다.

옛날 얘기를 왜 꺼내는가 하면, 젊은 여성들이 아직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수없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시집이나 잘 가라는 선생님, 취업 면접장에서 결혼할거냐, 아이 낳을거냐, 그러면 그만둘거냐 질문하는 면접관, 회식 자리에서 음담패설하고 성희롱하는 상사와 동료들... 이들은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야비하고 차별적인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당하는 여성들이 얼마나 상처 받고 분노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많은 경우 권력 위계에 차이가 나서 대놓고 화를 내거나 맞공격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당해도 계속 가만히 있으면 그런 일은 반복된다. 지속적인 관계라면 불편하다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한다. 게임이론의 연구결과를 참고해 보자. 지속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의 협력을 얻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되갚기(tit for tat)'인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부터 선의를 가지고 협력하되, 상대방이 만약 공격하면 그대로 되갚는다. 단, 몇 배로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꼭 당한 만큼만 갚고, 빨리 용서한 후 다시 선의로 대한다. 이 원칙을 지켜나가면 상대방도 계속 선의로 대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참가자의 특성과 게임의 목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상호이타성을 이끌어내는데 참고할만한 방법이다. 나나 주변 사람이 모두 성자가 되면 더 좋겠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갚을 때, 그 표현을 어떻게 하는가는 참신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 내 지인 한 분은 언제 결혼할 거냐고 짓궂게 가끔 묻는 동료에게 “그러는 선생님은 부인과 언제까지 사실 건데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나이 사십까지 혼자 잘 살고 있으면 그런 줄 알면 되지, 왜 자꾸 달리 살라고 종용하느냐 반박한 것이다. 다시는 귀찮은 질문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추석 무렵 많은 이에게 통쾌함을 선사한 칼럼처럼, 명절마다 던지는 친척들의 해묵은 질문에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 것도 방법이다. 자주 받는 귀찮은 질문에 참신한 대답 몇 가지쯤은 준비해두고 지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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