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싸우려고 했던 건
전시 성폭력과 인권유린,
그 밑바탕의 국가주의·제국주의”

바바라 크루거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에서 접한 신작과 기존 작업들은 그저 놀랍다.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페미니즘의 위치는 바바라 크루거에 힘입은 바 크다. ‘당신의 몸은 전쟁터이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문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치한 일상에서 차용된 시각이미지들 위에 얹혀진 강렬한 메시지들은 현실을 바닥에서부터 끓어 오르게 한다.

전시를 본 며칠 뒤 영화 ‘주전장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의 GV에 참여했다. 영화는 일본계 미국인 감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주요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 나가는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위안부 그들은 성노예인가? 강제징집인가? 그 숫자는 정말 20만명인가?와 같이 어찌보면 우리에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마저 불편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감독은 영화 내내 감정의 자극을 최소화하며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 하는 이유를 화면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현재 권력 및 미래 권력까지 소유하려는 당연한 속내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은 과거를 정리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1965년과 2015년에 협정을 맺는다. 이는 단순히 한일 양국의 결정이 아니라, 미국이 영향력 아래 진행된 삼각 외교의 결과였다. 일본 외무성의 백서를 기반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이라는 책에 의하면 1965년 협정은 베트남전을 관리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게 절실했던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2015년 역시 한·미·일 군사 삼각동맹을 통해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됐다. 전쟁폭력 피해자의 인권은 국가 간 이권 분배에 의해 흐려지고 지워졌다.

일본의 도발로 불붙은 한일 경제 전쟁은 나날이 그 전선을 넓혀 나가고 있다. 한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불매 운동도 한 달이 넘는 사이 커져만 가고, 일본도 이에 질세라 비방과 모략의 정도를 키워 가고 있다. 그러나 이 경제 전쟁은 우리가 애초에 무엇과 싸우려 했는지 잊게 만든다. 우리는 일본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전시 성폭력과 인권유린,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던 국가주의,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이다.

전쟁은 개인의 몸 위에서 일어나지만 그 사실은 종종 잊혀진다. 바바라 크루거가 말한 은유의 전장이 아닌, 상흔으로 육체에 새겨지는 전쟁이 위안부, 징용병, 강제동원 노동자의 몸 위에서 벌어졌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켜 수없이 많은 생명을 죽게 했으며, 자국의 여성뿐 아니라 식민지 국가의 여성들을 군인들의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조선인뿐이 아니다. 필리핀인, 대만인, 태국인, 호주인 그리고 일본인의 몸 위에서도 전쟁은 일어났다. 이들은 국적과 인종은 다르지만 약자라는 공통된 이유로 몸 위에 전쟁의 기억을 촘촘히 새겨 놓은 채 죽어갔다.

이는 곧 우리 스스로 내부에서도 풀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 혐오하는 국가주의라는 괴물은 한국 사회 안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운영했던 위안부, 휴전 후 지금까지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한 기지촌 여성들, 베트남 전쟁 중 일어난 한국군의 범죄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다. 법무부 장관이 유력한 조국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애국과 친일주의의 관점은 이런 면에서 위험하고 조악하다.

며칠 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녹색당 여성위원장들과 월례회의를 하던 중에 한국에서 진행중인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하며 한국 여성 문제에 대한 설명을 하다 책 『82년생 김지영』을 얘기하게 됐다. 말이 끝나자 마자 일본 위원장 케이코 씨가 일본에서 출간된 『85년생 김지영』을 꺼내 들며 화제를 이어나간 경험이 있다. 국민으로 키워졌으나 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일본에도 아베를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터가 어딘지를 떠올린다면 국경을 넘어선 연대는 꿈같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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