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화경] 커피가 만든 혁명의 공간
[커피 만화경] 커피가 만든 혁명의 공간
  • 박우현
  • 승인 2019.08.15 08:35
  • 수정 2019-08-14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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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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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커피는 베일에 싸인 비밀의 음료였다.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밤마다 모여서 커피를 끓여 마시면서 성스러운 기도 의식을 진행했다. 밤샘 기도에 잠을 쫓아주는 커피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 같은 존재였고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음료였다.

흔히 기독교에 와인이 있다면 이슬람엔 커피가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은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이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며 “이것은 나의 몸이요,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말한 일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지금도 가톨릭교회는 미사 중에 최후의 만찬 의식을 재현하면서 사제는 축성한 포도주를 신자들에게 나눠준다. 이른바 영성체 의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은 기독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음료다. 기독교 문명이 이슬람의 커피를 받아들이면서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 방증이다.

반면 술을 금하는 이슬람 사회에서는 술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커피는 바로 이러한 요구에 딱 맞아 떨어졌고 커피하우스를 통해서 대중에게 퍼져나갔다. 그때 커피하우스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모여서 놀기도 하고 술탄 왕조의 폭정을 욕하기도 했다.

스튜어트 리 앨런이 「커피견문록」에서 밝혔듯이 이슬람의 커피하우스는 각성과 토론의 공간이었다. 1554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카베하네가 오픈했을 당시만 해도 커피하우스란 공간이 각성의 장소가 되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유럽은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고해서 철저히 금했다. 금한다고 사람들이 안 마실까? 너도나도 몰래몰래 커피를 마시다보니 결국 교황청이 나섰다. 그런데 당시 교황이 커피를 마셔보고는 “이처럼 맛있는 걸 왜 저들만 마시는가, 우리도 마시자”라며 커피를 허가했다. 호사가들은 이 사건을 ‘커피 세례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 후 커피가 전 유럽에 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슬람보다 약 100년이 늦긴 했지만 유럽도 커피하우스의 등장과 함께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에 모인 유럽인들은 그 공간에서 만큼은 신분도 계급도 없이 평등하게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누구나 토론을 할 수 있었고 강의를 들을 수 있었으며 때로는 음악 연주를 때로는 문학 토론을 하기도 했다. 물론 정치 토론도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중은 커피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커피하우스가 유럽 근대 시민을 만든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민중을 깨어나게 하는 커피와 토론의 장이 되었던 커피하우스 공간은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온해 보였을 것이다. 당연히 이슬람과 유럽의 지배계층들은 커피하우스의 도전을 반기지 않았고 때로는 커피하우스 금지와 같은 압박을 가했지만, 결국 커피와 커피하우스에서 뻗쳐 나오는 대중들의 욕망과 에너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재밌는 건 한국의 경우다. 한국에서 대중의 집단적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인터넷 대중화와 맞물린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카페’가 생겼다. 가상 카페였고 커피향도 나지 않았지만 유럽의 커피하우스 이상으로 대중은 열광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그 후 수많은 온라인 카페가 생겨났고, 카페는 다양한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정보가 오가는 교류의 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유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활동은 정치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역사의 우연치고는 극적이다. 더 극적인 일도 있었다. 이스탄불의 커피하우스가 불온하다며 술탄 왕조가 금지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 게시판이 정권으로부터 압력을 받기도 했다.

또 하나 놀라운 일은 실제로 한국인이 획일화한 인스턴트커피에서 벗어나 원두커피나 에스프레소를 찾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온라인 카페가 번성하던 20세기 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커피는 각성과 혁명의 음료였다. 하지만 인간이 매일 혁명만 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앞으로 우리는 나의 일상을 잡아주는 커피를 찾아야 한다. 고된 삶 속에서 나를 견디게 해주고, 때로는 나를 위로해주고 거대 권력이 우리의 일상을 흔들 때 일어나게 해주니까.

* 별걸 다 하는 출판사 ‘우주소년’ 대표. 저서로는 『커피는 원래 쓰다』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문학커피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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