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대화방은 ‘보편적 인권’ 가치
신경 안써도 되는 남성연대 해방구
여성 굴복시켜야 ‘남성성’ 인정 받아

단톡방 십계명 ©한국성폭력상담소
단톡방 십계명 ©한국성폭력상담소

“음담패설을 사생활로 변명하지 마세요.”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캐지 마세요.”
“성구매 경험과 정보는 자랑거리가 아니에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모임 ‘MEKA’가 만든 ‘단톡방 십계명’의 일부 내용이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기본 상식 같다. ‘이런 것까지 다 얘기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단톡방에서 기본 상식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그 때문에 잘못된 성 의식이 번져나갈 뿐만 아니라 실제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것을.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우리는 십계명을 만들고, 이를 웹 포스터에 담아 배포하기로 했다.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실제 대응에도 사용할 이모티콘도 제작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단톡방 성폭력’은 핫 이슈였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사건이 터졌다. 이런 사건에서 여성 동료나 동기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것은 그나마 ‘얌전한’ 편이었다. 이곳에서 남성들은 어떤 여성과 섹스하고 싶은지 노골적으로 이야기했고, 자신의 섹스 경험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들에겐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섹스도 상관 없었고 성구매 경험도 상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사례가 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유통되는 듯했다. 무슨 ‘이색 체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혹은 다른 유명인들의 성관계 사진과 영상을 주고 받는 일도 다반사였다. 어떤 남성들은 일부러 공들여 불법촬영을 했다. 여성이 술을 먹고 정신을 잃도록 유도한 뒤에 마음 놓고 촬영하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은 적극적으로 파일 공유를 요청했고, 파일을 받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불법촬영물 사건이 터질 때면 이들은 가장 먼저 피해자 신상털이와 파일 검색부터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사용된 용어는 ‘섹스’가 아니었다. 훨씬 원색적인 말이 사용됐다. 이런 단톡방에서 여성은 그저 ‘따먹는’ 대상이었다. 남성이 성욕을 푼 뒤에 다른 남성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래서 성관계나 사진·영상 촬영 및 배포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물건에 동의를 구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그 동안 크게 논란이 된 사건은 주로 지식인이나 유명인 집단의 사례일 뿐이다. 이게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 그리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가 안다. 아마 누구보다 남성들 스스로 더 잘 아는 듯하다. 가해자들은 종종 “왜 우리만 잡냐”, “왜 지금 와서 그러냐”고 항변하곤 했다. 반발은 이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친구끼리 편하게 대화도 못 하냐. 단톡방 내용 공개는 사생활 침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누군가는 “불법촬영은 나쁘지만 단순히 파일을 받았다고 비난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단톡방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단톡방은 어떤 남성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공간이다.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남성연대 해방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연대에서는 여성을 배제하는데, 역설적으로 여성이 가장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여성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핵심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동료 남성들로부터 자신의 ‘남성성’을 인정받고 남성연대를 강화한다. 남성연대 안에서는 우두머리 수컷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섹스 횟수나 빈도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성을 더 많이 모욕하고 더 크게 굴복시켜야 한다. 이 룰에 따르지 않으려는 남성은 열등한 ‘보빨러(여성혐오에 동참하지 않는 남성을 비하하는 속어)’다.

미투 운동이 불꽃처럼 번져가면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높아졌지만, 단톡방의 남성들은 끄떡하지 않는다. 남이 한 것은 성폭력이지만 자신이 한 것은 그냥 ‘농담’이고 ‘장난’이고 ‘호기심’이니까. ‘성폭력 가해자’라는 괴물과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굳게 믿으니까. 우리는 이번 캠페인이 단톡방 이슈를 넘어서 잘못된 남성성과 남성연대 문화에 경종을 울리길 기대한다. 여성을 성의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는 남성들이 새로운 남성상의 표준이 되길 바란다. 그런 남성들이 많아지길 정말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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