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
토론회서 ‘결정 장애’ 용어 썼다가
지적 받고 혐오표현·차별 연구
“다른 위치 사람들 각자
차별의 경험 공유해야”

김지혜 교수가 9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차별의 경험을 꺼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도 모르는 사이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주민을 보고 “한국인이 다 되었네요”라거나 장애인을 보고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을 건네 본 적이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차별적 발언을 한 것일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칭찬과 격려의 의도였겠지만 듣는 사람도 똑같이 느꼈을까. 한국인이 되는 것이 칭찬받을만한 일일까. 장애인이면 무작정 희망이 없는 것일까.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는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등을 포함해 일상에서 이뤄지는 차별과 불평등의 사례와 원인을 짚는다. 강자가 약자를 차별하는 보편적인 사실에 넘어서 약자가 약자를 차별하는 경우를 추적하다보면 선량한 사람도 차별을 전혀 안 할 가능성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화여대·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홈리스에 대한 연구를 오랜 기간 해왔다.

그런 그가 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게 이 책의 출발점이다. 한 토론회에서 ‘결정 장애’라는 말을 썼던 것이다. 차별적 용어라는 인식을 못한 김 교수에게 한 참석자가 “왜 결정 장애라는 말을 썼냐”고 질문을 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정말 별 생각없이 차별적인 용어를 썼다는 걸 깨달은 김 교수는 혐오표현과 차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차별과 불평등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비교상대에 따라서 내가 우월적인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남녀의 경제적인 측면을 볼 때 항상 남성이 우월한 건 아니거든요. 우리는 그런 일들을 단면적으로만 보거든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라’고 하잖아요. 내가 우위에 있을 때 잘 안 보이는 것들을 반추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됩니다.”

ⓒ창비
ⓒ창비

평범함도 특권이 될 수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시외버스를 아무렇지 않게 타는 사람들이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에게는 결혼도 특권처럼 보일 수 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은 특권을 누릴 수도 있다. 밤에 공공장소에서 혼자 걷는 것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거나, 운전을 못 한다고 해서 성별을 탓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다.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차별의 경험을 꺼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랬을 때 서로가 느끼는 불평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기존 시스템에서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새로운 조건에서 무엇을 설계해 야할지 고민해야 해요. 근본적인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장애인들에게도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도 편리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김지혜 교수가 9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지혜 교수가 9일 여성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있다.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차별금지법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국가가 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정책을 세울 수 있고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해 차별행위를 하지 않을 동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차별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강하기 때문이다.

“차별은 일상에서의 삶과 무관하지 않아요. 차별금지법은 삶과 관련된 것이라서 모두의 이야기로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어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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