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jpg

@24-6.jpg

딸·사위와 참가 장명희씨

“소원 적고 가세요. 연에 붙여 드립니다.”

마라톤이 한창인 월드컵 공원 한 구석에서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한 여성이 열심히 소원을 적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사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외국에 있는 딸도 오늘까지 건강하고 좋은 배필 만나게 해주십시오. 소원이 꼭 이뤄지길.”

딸, 사위가 등장하는데 깜짝 놀라 가만히 보니, 그제야 연륜이 얼굴에서 보였다. 이 소원을 적은 장명희씨(57)는 딸 가족과 함께 이번 마라톤에 참가했다. 합정동 한 동네에 사는 딸 김경희 (32)씨 권유였다.

“가족이 같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인터넷에서 보고 여성마라톤에 같이 참석했어요.”

아버지 김용채(67)씨, 남편 김종경(36)씨, 아들 김규한(4)군까지 온가족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으며 한가로운 초여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규환이는 유모차까지 미느라 바빴다.

@24-2.jpg

~24-3.jpg

@24-4.jpg

~24-5.jpg

딸·아들 대동 임현국씨

3km를 달리거나 걷는 가족들은 마라톤대회보다 사진찍기 바빴다. 죽죽 늘어지는 뒷편에서 걷기보다 서서 사진찍기도 바쁜 한 가족. 더구나 아직 한참 걷기엔 힘겨워 보이는 네 살 은수는 그래도 따박따박 열심히 걸었다.

“원래 제가 마라톤을 좋아해요. 평소에도 마라톤을 두 달에 한 번은 꼭 즐기거든요. 그런데 항상 혼자만 하는 게 걸려서, 이번엔 가족이랑 같이 하려고 신청했어요.”

가족과 같이 마라톤을 즐기려고 인터넷서 보고 신청, 인천에서 올라왔다는 임현국씨는 척 보기에도 마라톤이 처음은 아닌 베테랑 복장이었다. 오랜만에 힘 좀 써보려는 아빠의 가족 사랑을 아는지 마는지, “인천 서면 초등학교 1학년이요”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큰 딸 은지 옆에서 엄마 김미영씨는 배시시 웃었다.

2번째 마라톤 참가 강정애씨

“5·4·3·2·1·출발”

5월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 쬐는 가운데 사람들의 함성과 출발을 알리는 총성으로 평화기원 제 3회 여성마라톤 대회 15km 코스가 시작됐다. 올해 참가자는 모두 300명 정도. 지난 해 10km가 올해는 여성신문 창간 15주년을 기념해 15km 코스로 조정됐다.

한강난지공원 반환점을 돌아 8km 지점에서 만난 강정애씨. 땀에 젖은 셔츠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참가했다며 끝까지 뛰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평소에 마라톤이나 운동을 좋아해서 별로 어렵진 않은데요. 며칠 전에 알레르기에 걸려 약을 먹고 있는데 오늘은 콧물 참는 게 제일 힘드네요.” 숨소리가 약간 거칠긴 했지만 기자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는 강씨와 호흡을 맞추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작년이죠? 여성신문사에서 처음 여성마라톤 시작할 때 10km에 참가해 완주했어요. 올해가 2번째 참가하는 건데요. 10km는 거뜬하게 뛰겠는데 5km 늘어나니까 너무 힘드네요.”

마라토너 건강관리 이상욱 대표

“올해는 큰 사고 없이 그냥 놀러오시는 분들만 계시네요.” 타박상 정도의 가벼운 상처는 ‘놀러온다’는 표현이 맞을 지 모르겠다. 여성 마라톤 대회 출전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EMS 코리아의 이상욱 대표는 혹시나 발생할 지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해 결승점 지점에서 앰블런스를 타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번 대회 동원된 앰블런스는 총 3대. 나머지는 각각 5km, 15km 코스를 따라 돌았다.

“의외로 풀코스보다는 하프코스에서 무리하게 달리다 보면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구요. 얼마전에 일산 쪽에서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이 사망한 사고도 있었잖아요. 의료체계만 갖췄어도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안타깝죠.”

적어도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려면 사전에 코스와 참가인원을 꼼꼼하게 따져 의료장비나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평소에 달리면 15km 가뿐해요”

돋보인 40대 '아줌마'들

하늘공원 다리로 돌아오는 10km 지점. 5km 완주자들이 간간히 지친 모습으로 걸어가는 반대 편에 15km 참가자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더러는 걷거나 쉬어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상기된 얼굴로 10km 지점 표시를 지나쳐 갔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3, 5km와 달리 15km 참가자들은 그야말로 묵묵히 달리는 마라토너의 분위기를 연출해 눈길을 끌기도. 특히 ‘40대 아줌마’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상계동에서 온 조숙인(49) 씨는 “마라톤 대회는 처음이지만 평소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딸의 건강을 생각해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며 “지금쯤 딸이 5km 결승점에 다다랐을 것”이라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뒤따라오던 의정부 마라톤 클럽의 윤기순(46) 씨는 “여성신문 마라톤 대회는 처음 알았지만 코스가 아주 좋다”며 “내년에도 꼭 참가할 생각”이라 전한다. 노원육상협회의 김순희(46) 씨 역시 “일상적으로 달리다 보면 먼 거리를 뛰는 데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며 “마라톤 대회에 한번 참가하면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어주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젊은 20대들도 만만치 않은 15km 완주. 순위에 관계없이 완주에 성공한 여성들에서부터 1, 2, 3위를 휩쓴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40대 여성들의 활기가 마라톤 대회를 더욱 빛나게 하는 하루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