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여개 품목 타격 예상
청와대 "깊은 유감...단오한 자세로 대응"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합의가 사실상 실패한 지난 1일 서울 성동구의 한 지하철 역사 내에 일본의 경제보복와 아베를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뉴시스

혹시나 했지만 이변은 없었다.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를 전략물자 관리 우방국 목록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소재는 물론 주요 장비까지 국내 산업 전반이 생산 차질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사드 보복,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이번 일본이 기획한 2차 경제보복을 비롯해 향후 추가 보복을 여러 차례 이미 밝힌 바 있어 한일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2일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재에 나섰으나 아베 총리가 결국 강행을 결정해 각의가 시작된 지 10분에 처리됐다. 이로써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혜택을 받는 27개국 국가에서 제외됐다. 일본 측은 오는 7일 개정안을 공포한 후 28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화이트리스트는 믿을 수 있는 국가 명단이란 뜻으로 양국 신뢰를 바탕으로 수출 심사 시 빠르게 진행하는 우대 제도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건별로 매번 우대가 없어져 세세한 품목까지 일본 허가를 거쳐야 한다.

이번 개정안으로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의 한국 수출은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뀌면서 수출 절차가 엄격해진다. 일본은 전략물자 1120개 중 857개 품목에서 안보 우방이라 일컫는 국가들이 원활한 수출이 되도록 일반 포괄 허가를 내줬는데, 한국이 안보 우상 국가에서 제외되면서 통상 6개월 단위로 허가를 신청하고 90일간 심사를 받아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857개 품목에 대해 건건이 일본 통관 절차를 거쳐야 그 품목을 배에 실어준다는 뜻으로 한국에게 타격이 집중된 품목인 반도체 소재 등 지금까지 우위에 있었던 품목들을 겨냥해 일본이 주도권을 갖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허가가 안 나오거나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요공급 예측이 불확실해져 일본 정부의 결정에 따라 손해를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우리 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수출을 지연시킬 경우 우리 기업에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우리 기업이나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다.

예컨대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국내서 영향을 받는 품목은 1000개가 넘는데, 그 중 반도체 부품 장비나 석유 화학제품, 공작 기계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지난달 4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허가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화이트 국가 제외를 단행한 배경에는 일본이 안전 보장이나 수출 관리 등 이유를 대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한 보복 조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각의 결정 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어떤 사안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며 이번 조치가 국가 경제나 기업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일본이 대만과 동남아 국가들과 공급망을 정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어떤 사안과 대항 조치는 강제노역 배상 판결로 인한 한일 관계 약화를 뜻하며 강제노역 배상 판결 사안으로 경제적 보복에 나선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모면함과 동시에 일본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이날 이번 조치를 단행한 배경으로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문제 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로 일본 국내 여론과 미국 정부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를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재검토를 언급하며 일본과의 안보 협력 구조를 검토 가능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경제에 관련시킨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기로 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아베 내각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단호한 자세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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