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성주의자들이 기존의 대중매체나 유행에 쫓아가지 않으면서 나름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아요. ‘여성주의 스타일!’ 예전에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한 표현으로 펑크 스타일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도 지금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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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영민>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옷 입는 것도 불편하다. 남성중심의 성상품화된 패션 경향에 안티를 걸면서 스스로를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전략적인 옷차림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리하여 마련된 코너, Style in Feminist의 두 번째 주인공은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페미니스트 가수 지현이다.

페미니스트의 패션이나 스타일을 지현 만큼 고민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사실 자본과 성이란 관점에서 패션을 대하는 여성주의자들은 자기검열을 철저히 하지만 그렇다고 지현의 스타일에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결코 체격이 크거나 보이쉬한 차림이 아닌데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지는 지현의 패션. 그 A에서 Z까지.

보라색 두건에 보라색 헐렁한 셔츠, 간간이 분홍색의 수가 눈에 띄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랏빛이 물든 태국 전통 랩바지(앞에서 보면 월남치마다)를 받쳐입고 약속한 장소로 등장했다.

“희랍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요. 한 남자에 의해 고통받는 두 여자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수를 놓거든요. 그게 자주 빛이에요. 자주와 보라는 고통을 강요받았던 여자들의 색깔이에요.”

지현에게 보라색은 영원한 트레이드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가끔 블랙을 즐겨 입긴 하지만 데뷔이후 의상 컨셉을 보라색으로 잡고 나니까 오히려 코디하기가 편하다고.

“저 사실 얻어 입는 게 많아요. 이 셔츠도 친구가 직접 나염해서 준 옷이고 제가 신은 빨간 슬리퍼도 고모가 준 거예요.” 다른 가수들처럼 코디의 도움이나 브랜드 협찬을 받지 않는다. 대신 그녀에겐 튀는 감각이 있다. 대학 때 전공이 가구 디자인이라고 하더니 손재주도 많다. 인터뷰를 위해 저녁에 손수 만들었다는 큰 물방울 귀걸이를 빼서 보여준다. “이쁘죠? 별로 어렵지 않아요. 이거 낚시 줄에다 하나씩 꿰면 되거든요.”

그리고 눈길이 가는 건 그녀의 코에서 반짝이는 또 하나의 액세서리, 피어싱이다. “5년 전인가 사람들이 그 때 코에다 피어싱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뻐서 이걸 뚫으러 갔는데 너무 아픈 거예요. 구멍이 뚫리는 순간, 저절로 눈물이 뚝뚝뚝 흐르더라구요.” 알고 봤더니 그녀, 당시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할 때였는데 부모님은 물론이고 유치원 아이들이 코에 뭔가 들었다고, 아프지 않냐고 물어봐서 한 동안은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몸을 자유롭게, 사이즈로부터 해방

가만히 쳐다보니 얼굴도 꽤 작다. 어∼ 지난번과 좀 다르다 했더니 두건 때문이었다. “머리를 밀어서 얼굴이 얼마나 커 보이는데요. 그런데 두건을 쓰면 얼굴이 작아 보여요.” 두건은 색색별로 다 가지고 있고 큰 귀걸이 모으는 게 취미고 히피나 애스닉, 힙합 스타일을 좋아한다.

“예전에 <엘르>나 <보그> 잡지 좋아했죠. 그런데 그대로 쫓아가려면 자기비하에 빠지게 돼요. 어떤 게 어울리는 지 자기스타일부터 찾아야 하는데 이건 뭐, 사이즈도 맞지 않는 작은 옷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게 되잖아요. 우리 몸은 규격화된 상품이 아닌데.” 지현은 사이즈에서의 해방을 강조한다. 그래서 옷을 살 때도 규모보다는 사이즈가 많은 가게를 찾아야지 자기 만족을 더욱 누릴 수 있다는 것.

“너무 짧은 치마와 꽉 끼는 바지 안 좋아해요. 그리고 가슴이나 엉덩이, 지나치게 자기 생식기를 드러내는 듯한 노출도 싫어요. 얼마나 불편한데 몇 시간 입고 입겠어요?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앉아 있을 때 불편하죠, 늘 배에 힘주고 몸매를 위해 쪼이는 속옷도 갖춰 입어야 하잖아요. 요즘은 팬티라인 드러난다고 속옷도 안 입는다고 하는데 몸을 해방하는 게 아니라 구속하는 거예요.”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사랑한다면 생식기를 불편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가끔 지현의 무대의상만 보고 ‘뭐, 지현도 노출하잖아’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몸이 안 된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을 주고 싶어요. 규격화된 몸을 누가 정했는지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기를 바라면서요.” 지현이 진정 추구하는 스타일은 기존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 같이 바람불면 쓰러질 듯한 몸을 하고 있는 여자 가수들을 보면 불쌍하다 못해 안 됐다고 생각한다.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너무 멋지지 않아요? 요즘 근육 운동과 재즈댄스를 하는데 꾸준히 하다보면 몸에서 활기와 힘이 묻어나거든요. 그런데 참, 근육 운동 하는 것도 남녀차별이 있나요? 가슴 근육을 크게 하는 운동도 있고 또 허벅지나 팔은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러죠. 근육 하나에도 남자, 여자 따지는 데 우스워요.”

페미니스트 패션 리더는 아무나 되지 못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으면서 반여성적인 패션과 유행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놓지 않는 그녀, 이쯤이면 지현에게 페미니스트 패션 리더라는 별명을 붙여줘도 좋지 않을까.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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