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규직 직급인 ‘선임’으로 발령받은 강성태 홈플러스목동점 선임(31)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홈플러스

’비정규직 제로화‘를 외치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째를 맞아 민간기업까지 비정규직 제로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여성 직원이 비교적 많은 유통업계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책 기조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1일 무기계약직 사원 1만4283명을 정규직인 선임으로 발령했다. 이는 홈플러스 전체 임직원 중 약 52%에 달하는 인원으로 업계 최초이자 국내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와 홈플러스스토어즈·홈플러스홀딩스 등 홈플러스의 전체 임직원 2만3000여명 중 정규직 비중이 99%(2만2900명)에 달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1%(228명)에 그친다.

주목할 점은 홈플러스의 정규직 전환이 별도의 회사를 세우는 등 자회사 설립이나 직군 신설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민간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직접 흡수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 신입 정규직과 기존 정규직까지 혼재되면서 직급·연봉 등 형평성이 있기 때문에 같은 호봉으로 같은 업무를 취급하는 것이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별도의 법인을 세워 그 법인이 고용하는 간접고용 방식이 아닌 기존 정규직 직급 ’선임‘을 통해 고용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세부적으로 선임으로 발령난 1만4000여명에 이르는 무기계약직 사원들의 임금은 158만3000원에서 176만5000원으로 소폭 올랐다. 또 연봉 인상 효과에 맞춰 정규직 직급체계와 동일한 승진 프로세스가 적용된다. 무기계약직은 승진에서 사실상 제외됐지만 자동승급 제도에 따라 선임으로 5년간 근무하면 주임, 4년 후 대리, 그 이후 근무 평가와 근속 년수에 따라 과장, 차장, 부장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무기계약직으로 입사한 이들이 '점장'을 꿈꾼다는 말이 가능해진 것이다.

여기에 홈플러스는 이번 정규직 전환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력개발 지원프로그램을 제공해 점장이나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전체 직원 중 72.5%가 여성으로, 여성 관리자가 나올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관리자로 승진한 여성 직원은 11명이었으나 올해 74명이 관리자로 승진했다. 이미 전체 관리자 승진자에서 여성이 25.3%를 차지하는 중이다.

아울러 홈플러스 임직원 평균 근속기간도 증가하는 추세다. 평균 근속 기간이 지난해 남성 111개월 대비 여성 86개월로 2017년 남성(103개월)과 여성(77개월)과 비교해 모두 늘었다. 회사 측은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이 지속 증가해 안정적인 점포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번 정규직원들과 정규직 저연차 직원과 급여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다”라며 “기존 정규직 저연차 직원분들에 대한 급여를 인상해 거기에 따른 불만은 우려했던 것만큼 많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국내 부엌가구제조·유통 및 인테리어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샘도 정규직 전환 흐름에 가세했다. 한샘은 지난 2013년 홈인테리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 업계서 첫 2조원을 돌파한 한샘디자인파크와 대리점을 갖춘 업계 1위 회사다.

업계 최초로 지난해 임직원 3000여명 중 4% 수준인 111명의 계약직 전원을 조건 없이 본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같은 해 하반기 20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정규직이 된 직원들은 남성 35명(32%), 여성 76명 (68%)으로 여성이 2배 이상 많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들 중 15명이 퇴사해 96명으로 남성 29명, 여성 67명이 현재 근무 중이다.

이들은 승진 기회와 복리후생 등도 모두 기존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됨에 따라 그 중 남성 3명, 여성 20명이 승진했다. 근속년수 역시 남성과 여성이 각각 2년 4개월, 2년 5개월로 비슷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샘은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100대 기업 평균 계약직 비율이 8.6%과 비교할 경우, 비정규직 직원 비율이 낮은 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발맞춰 차별 없는 근로 환경을 만들겠다는 최양하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회사 측은 강조했다. 한샘 관계자는 “현 재직 인원 중 70명 가량이 2017년 입사했다”라며 “승진 연한 미충족 인원이기 때문에 승진율이 낮다”라고 말했다.

앞서 이영식 한샘 사장은 “2년 후 2020년이면 창업 50주년으로 중견기업 규모에서 정규직 100% 전환되는 최초”라며 “회사는 한 번 채용한 인원은 일하기 좋은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용 안정을 보장할 것”이라고 평소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도 현대백화점이 지난 2017년 비정규직 직원 23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정부 공약을 처음으로 실행한 유통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는 같은 해 뽑은 신규 채용 인원인 2340명과 맞먹는 격이다.

현대백은 고객 케어 관련 접점 업무 및 사무 보조 직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직원 1400여명과 현대그린푸드 소속 판매 인력 등 비정규직 7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현대홈쇼핑 등 다른 계열사에서도 총 200여명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여기에 파견 및 도급회사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진행할 예정이며 연내 추가 전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업계 1위 이마트도 지난 2007년과 2013년 두 차례 비정규직 1만5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마트노조는 복지, 승진 등 처우가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도 아니라는 이유로 회사가 무기계약직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통업체들은 일반적으로 24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온 터라 비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인한 여파가 크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인사나 급여체계 등 실질적으로 차별받는 상태를 개선해 노동의 최저선을 적극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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