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 ‘려행’ 임흥순 감독
10명의 탈북 여성 인터뷰 통해
“북한에 대한 다양한 시선 만들고 싶었다”
제주 4·3사건·노동·분단
여성의 목소리로 풀어내

 

임흥순 감독은 도시환경, 계급, 노동, 가족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려행'에서는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한의 분단을 다뤘다. ⓒ영화사 반달
임흥순 감독은 도시환경, 계급, 노동, 가족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려행'에서는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한의 분단을 다뤘다. ⓒ영화사 반달

“노동조합을 해도 빨갱이, 자기표현을 해도 빨갱이라고 사람들이 부르잖아요. 한국 사회 저변에는 분단의 영향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단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했죠.”

임흥순(50) 감독은 다큐멘터리 ‘려행’에서 탈북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분단을 다뤘다. 8일 개봉하는 ‘려행’은 여성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위로공단’(2014)으로 한국인 최초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 감독의 신작이다. 남한에 정착한 10명의 탈북 여성들의 인터뷰를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는 10명의 여성들이 남한으로 건너오게 오게 된 과정보다는 이들의 입을 통해 북한의 현실과 실생활, 남한에서의 정착 과정을 들려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김경주씨는 북한에서 식량 배급이 끊기자 노동자들이 풀뿌리를 캐 먹었다는 경험담을 전한다. 이윤서씨는 서울에 처음 도착한 날, 머리 위에 치솟은 빌딩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북한이라는 소재는 보통 정치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고 ‘핵 실험’ 등의 단어와 안보, 전쟁 등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다큐 속 탈북 여성들의 경험담은 북한을 가까이에서 일상경험과 현실로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임 감독은 2015년 ‘김근태 재단’에서 하는 추모 전시회에 참가해 탈북가수 김복주씨와 북한산을 올랐다. 북한에서 보낸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26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북한산’을 찍었다. ‘북한산’의 장편 버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임 감독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의 지원을 받고 9명의 탈북 여성들을 더 소개받아 86분짜리의 새로운 다큐를 만들 수 있었다.

‘려행’에 나오는 탈북 여성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사를 풀어놓는다. 북한에서의 일상, 남한으로 와서 느꼈던 놀라움 등이 담겨 있다. ⓒ영화사 반달
‘려행’에 나오는 탈북 여성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사를 풀어놓는다. 북한에서의 일상, 남한으로 와서 느꼈던 놀라움 등이 담겨 있다. ⓒ영화사 반달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탈북 여성들은 자신들이 풀어낸 이야기를 직접 재연하기도 했다. ⓒ영화사 반달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탈북 여성들은 자신들이 풀어낸 이야기를 직접 재연하기도 했다. ⓒ영화사 반달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찍으려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공간을 가보는 건데, 북한은 가 볼 수가 없잖아요. 유일한 통로가 듣는 것이었습니다. 10명의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을 ‘여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개인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북한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만들어주는 게 작업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임 감독이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신매매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개인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인데 방치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다큐에는 인신매매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말로 꺼내는 게 탈북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고 감독은 말했다.

경원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임 감독은 도시환경, 계급, 노동, 가족에 대한 전시, 영상 작업 등을 해왔다. 최근 연출한 다큐에서는 여성이라는 키워드도 보인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비념’(2012)에서는 남편을 잃은 한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위로공단’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여성노동자들이 겪은 고통과 어려움을 그려냈다.

공공미술(조각이나 벽화처럼 대중을 위한 미술)을 하는 임 감독은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많은 주부들을 만났다. “일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 같았다.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컸다”고 했다. 여성들이 각자의 생각과 경험 같은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는데도 능숙한 것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다.

다큐에서 한 탈북 여성은 “저희가 바라는 통일은... 사소한 건데 가족과 식사할 수 있는 날”이라고 말한다. 임 감독은 “남성들이 현실적인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면 여성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고 감정적인 것들을 많이 말하더라. 제가 ‘여성의 언어’에 주목한 이유”라며 “작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우리가 발견 못 한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큐에는 탈북 여성들이 자신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직접 재연하는 장면이 중간 중간 나온다. 다큐 속에 또 하나의 영화가 들어있는 셈이다. 임 감독은 “탈북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재연했을 때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면서 자신의 상처가 치유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임 감독은 ‘려행’이 통일의 씨앗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북한을 이해하는데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다큐 속 탈북 여성들이 평화 통일로 가는 매개자 역할이 되면 좋겠습니다.”

임 감독은 여성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세상에 끄집어내 분단에 대해 더 다룰 예정이다. 1945년 전후, 이른바 ‘분단 시대’에 살았던 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 올해 말 개봉 예정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26년 동안 독립운동을 하고, 제주 4.3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라산에서 활동하고, 6.25 전쟁 직후 지리산에 올라갔던 세 할머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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