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은 동성애 옹호”
보수 단체 강한 반대 부딪쳐
부천시, ‘성평등전문관’ 논란 일자
젠더→성평등→양성평등→결국 삭제
여성정책 용어 논란 10년째 이어져
“양성평등 개념 재정립” 제안도

반동성애단체들은 “‘성평등’ 용어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이라며 ‘양성평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반동성애단체들은 “‘성평등’ 용어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이라며 ‘양성평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시스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를 두고 전국 곳곳이 진통을 겪고 있다. 지역은 다르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성평등’이란 용어가 들어가는 법안이나 조례 개정안이 발의되면 보수단체 등이 연일 시위를 벌인다. ‘성평등’은 성소수자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양성평등’은 성소수자를 배제한 개념으로 쓰이면서, 보수개신교 등 일부에서 “‘성평등’ 용어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이 반대를 내세워 ‘성평등’ 용어를 포기하거나 아예 폐기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는 지난 7월19일 ‘성평등전문관’ 신설 내용이 삭제된 ‘성평등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하 성평등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7월25일에는 부천시의회가 본회의를 열고 해당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성평등전문관’이 아닌 ‘양성평등전문관’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지만 결국 직제 신설은 무산됐다.

당초 7월9일 장덕천 부천시장 이름으로 발의된 성평등 개정안은 성평등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성평등전문관’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주요 뼈대다. 성평등전문관은 시정 전반에 성인지 강화와 성주류화 확산을 위해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 처음 부천시는 개정안은 ‘젠더전문관’으로 명시했으나 “젠더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족”하다며 ‘성평등전문관’으로 바꿨다. 명칭 변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수개신교 등 일부 단체가 반대 시위를 벌이자 부천시는 입장을 바꿔 ‘성평등전문관’을 ‘양성평등전문관’으로 수정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부천시의회장 앞으로 보냈다. 부천시는 “부천시 기독교 총연합회 등 65개 단체가 집회 및 1인 시위 등을 통해 전문관 명칭 변경 요구”를 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결국에는 전문관 신설 내용을 삭제한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장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젠더전문관’과 ‘양성평등전문관’은 평등에 바탕을 둔 여성정책을 위한 제도로 명칭과 역할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본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부천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단체들은 “‘젠더’, ‘성평등’은 사회적 성소수자를 포함한 용어이고, ‘양성평등’은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담고 있다”며 “차별적 용어를 공식화하는 장 시장은 성인지적 감수성 부재로 성평등에 대해 이해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천시의회는 앞서 6월29일에도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에 나섰다가 보수단체 반발로 철회했다. 다른 사회의 문화를 편견 없이 바라보고 상호 이해를 증진한다는 취지였지만, 보수단체가 “‘문화다양성’이 동성애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반발해 결국 무산시켰다.

‘젠더’와 ‘성평등’ 용어를 둘러싼 논쟁은 부산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6월 부산시의회는 젠더자문관을 신설하는 내용의 ‘부산광역시 양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안이 보수기독교단체 등의 반발로 부결됐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7월 16일 본회의에서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과시켰다가 후폭풍을 겪고 있다. 개정된 성평등 기본조례 18조2항에 명시된 ‘성평등위원회’라는 표현 때문이다. 보수단체와 일부 종교단체는 곧바로 ‘나쁜 성평등조례 반대와 개정을 위한 건강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연합’을 만들어 성평등 기본조례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개정된 성평등 기본조례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안 발의자인 박옥분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위원장에게 ‘총선 때 가만두지 않겠다’ 등 수백 개의 협박·욕설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위협하기도했다.

여성정책 용어를 둘러싼 논쟁은 10년 전부터 이어졌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되는 과정에서 용어 논란이 심화됐다. 2010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새 명칭을 두고 ‘성평등기본법’(신낙균 의원 대표 발의)과 ‘여성정책기본법’(정부 발의) 경합하면서 부터다. 두 법안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고 2014년 또 다시 ‘성평등기본법’(김상희 의원 대표 발의)과 ‘양성평등기본법’(신경림 의원 대표 발의)으로 개정안이 발의됐다. 성소수자 이슈가 핵심 쟁점이 된 것도 이때 부터다. 2015년 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고 ‘양성평등’이 ‘성평등’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혼란과 잡음이 이어졌다. 2015년 대전시가 성소수자 인권 보호와 지원에 관한 조항을 담아 성평등 조례를 만들자 여성가족부는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은 양성평등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났다”며 대전시 측에 ‘성평등’ 삭제를 요청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양성평등’을 여성과 남성 간의 기계적 평등으로 해석해 일부 지자체는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여성단체에게만 맡길 수 없다며 관련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했다. 진나 2018년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법무부와 검찰 구성원에 대한 ‘양성평등교육’ 예산을 삭감하는 일도 있었다. “교육 내용에 성소수자를 시칭하는 ‘성평등’이 포함됐다”며 일부 의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양성’평등은 성평등을 ‘젠더(gender)’평등이 아닌 ‘생물학적 성별(sex)’에 따른 기계적 평등의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오도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양성에 기반한 이분법적 성차별만을 기준으로 여성 간의 차이와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성연합은 “성차별은 계급, 계층, 이주와 장애 여부, 성적 지향에 따라 그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양성평등은 다층적 차별과 폭력을 다룰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성평등, 젠더 사용을 제시한다.

최근에는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대립 구도에 놓일 개념이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양성평등 개념을 재정립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유정미 충남여성재단 연구위원은 올해 발표한 논문 ‘반격의 ‘양성평등’에서 ‘(양)성평등’의 재정립으로’ 에서 “그동안 여성정책 용어를 둘러싼 논란의 배경에는 성별 관계 변화를 저지하고 반격하려는 데 있다”면서 “변화를 저지하려는 측은 논리적 타당성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책 용어와 실천 효과를 훼손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반격의 프레임에 대항하기 어려우며 ‘양성평등’과 ‘성평등’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양성평등이라는 용어가 반드시 이원적 성별 구성을 강화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성소수자 이슈의 연결 역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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