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기업 내 성폭력 사건 벌어져도
피해자는 절차서 배제되는 경우 많아
징계절차도 내부규정 따라 천차만별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피해자가 언제는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피해자가 형식상 당사자로서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여전히 남아있어 조속한 개선을 요하고 있다.

성희롱·성폭력 사안의 피혐의자인 서울대 모 학과 교수의 연구실을 학생들이 점거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대 인권센터로부터 권고된 처분양정에도 불만이 있거니와 수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징계처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 대한 항의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당사자는 당사자로되, 그 ‘당사자성(性)’이 절차상 충분히 인정되지 못해 왔던 근본 문제가 깔려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형사사법 절차에서라면 여기서 직접 등장하는 두 주체, 그러니까 두 당사자는 기본적으로 검사와 피고인이 된다. 하지만 여러 제반규정의 거듭된 보완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당사자성은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성폭력 피해자의 변호사에게는 공판기일이 통지되며, 의견진술과 서면제출 기회도 보장된다.

그런데 대학을 포함한 일반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체 등에서 이루어지는 성희롱·성폭력 관련 징계절차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무엇보다도 각 기관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징계절차를 통일적, 구체적으로 규율하는 법률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 부분은 법이 침묵하고 있는 영역이다. 그러다보니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정해두는 자치규범에 따라서 절차진행의 향방이 좌우된다. 내부 규정이 엉성하다면 절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사법적 쟁송이 판단을 내리는 제3자의 면전에서 제각기 주장을 펼치는 양측의 대등당사자를 전제로 하는 삼원적 구조라면, 기관 내 징계절차는 이와는 달라서 양측 대등당사자의 대립구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특성도 있다.

기관 내 징계절차는 애초에는 이원적 구조를 전제로 하여 구성되었다. 말인 즉, 본래는 ‘기관’이 ‘피혐의자’ 본인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것, 그 자체만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금횡령이나 피해자를 발생시키지는 않은 음주운전, 현저한 직무태만 등에 대한 징계처분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생각해 본다면 징계절차가 이원적 구조 하에서 별 무리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쉽게 이해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응당 문제시되었어야 하나 이전까지는 문제로서 여겨지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제재 대상의 목록을 새로이 구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체 현상은 아직도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성희롱·성폭력 사안처럼 피해자의 존재가 당연히 전제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이원적 구조만을 협애하게 상정했던 케케묵은 규정들의 그림자가 여전히 길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한 번 살펴보자. ‘남녀고용평등법’은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 이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문언을 마련해두고는 있지만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없다. ‘양성평등기본법’과 그 하위 규정들에는 ‘남녀고용평등법’과 같은 내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공무원에 적용되는 ‘공무원 징계령’에서 피해자의 진술권 규정을 신설한 것은 불과 3개월 전인 올해 4월 16일의 일이었는데, 그나마도 이는 올해 4월 17일 위 징계령 시행 이후 징계의결이 요구된 사건부터 적용될 뿐이다. 말 그대로 ‘공무원 징계령’이니 일반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체와는 무관한 규정이기도 하다.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수긍할 수 있듯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는 엄연한 당사자다. 피해자의 절차상 의견진술 기회라는 것이, 마치 대단한 시혜라도 되는 양 기관장의 자비와 관용에 따라서 ‘베풀어져서는’ 안 된다. 재심의의 청구 등 불복기회 또한 피혐의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정도로 피해자에게도 당연히 열려 있어야 마땅하다. 일반화된 법률규정의 마련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당장 여의치 않다면 여성가족부 등 주무부처의 지침 등으로 성희롱·성폭력 징계절차 상에서 피해자 의견진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할 것, 그리고 피해자에 대하여도 처분결과에 대한 공식적 불복의 기회를 반드시 제공할 것을 분명하게 권고해야 할 것이다.

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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