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거나,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방치하거나,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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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저소득층 가정의 사교육



지금은 고1인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수학 시험을 보고 와서는 “엄마, 우리 반 00는 빵점 맞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작년에 둘째 애 반에는 꽤 말썽꾸러기인 아이가 있었다. 자연히 엄마들끼리 만나면 그런 아이와 가정이 입에 오르게 된다. “그 애는 5+2를 52라고 답 쓰는 애예요” 이 아이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동네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서 두 분 다 밤늦게 들어오거나 아니면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살거나 한다. 집에 부모 중 한 분이 있다 하더라도 필경 아이를 봐줄 심리적 안정감이 없거나 실제 봐줄 여력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 중, 부부들이 박사 부부라도 인문 계통이면 수학 같은 경우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도 봐주기 어렵다며 학원을 보내거나 대학생 과외 선생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필경 가방끈이 짧은 부모가 집에 있다하더라도 아이의 학습을 챙기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3, 4학년 실력을 갖고 중촵고등학교에 그냥 진급하게 된다. 딸애가 중학생 때, 시험감독을 가면 한 줄에 한, 두 명씩은 아예 시험 문제를 풀 것을 포기하고 누워 잠을 자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필경 학습 방치아일 것으로 짐작된다. 제3자인 내가 볼 때도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부모 마음은 오죽할까? 그러니 어떻게든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가난한 부모들 역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교육에 의존한다.



아동복 가게를 하는 A씨는 남편은 장애인으로 소득 활동을 하지 못한다. 가게를 해서 버는 월수입 70만원 정도와 월 3만6000원 받는 국민기초 생활수급 수당이 소득의 전부다. 그러나 가게 수입은 월30만원씩 나가는 이자를 빼고 나면 실수입은 40만원 정도이다. 이 어머니는 딸에 대한 교육 투자로 월 10만원 하는 수학 학원을 보내고 있는데, 매번 두세 달씩 학원비를 밀리기 일쑤다.



지역 공부방, 학습지원 절실



장애인인 남편과 큰딸, 그리고 작은딸을 둔 B씨 역시 기초생활 수급권자로 월 25만원의 수당과 장애 수당 월 7만5000원을 받는다.



남편은 월평균 30∼40만원 가량 벌어다 준다. 본인은 몸이 여기 저기 아파 매일 일나가지는 못하고 반나절 파출부 일을 주 2일 나가 월 20만원 가량 번다. 이 어머니는 작은딸이라도 정상적으로 대학을 보내고 싶어 고2때부터 고3, 1학기 때까지 1년 6개월을 학원에 보냈다. 학원비는 석 달에 한 번 90여 만원이 들어갔다.



딸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 먹는 거, 입는 거에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반찬은 복지관에서 1주일에 한 번 오는 걸로 해결하고, 의복은 아파트에 새벽에 일찍 나가서 구두랑 옷을 재활용함에서 주어와 입고 썼다. 돈이 없으면 현금 서비스를 받아 학원비를 내고 때때로 친정 동생에게 돈을 꾸거나 받기도 했다. 이렇게 뒷받침한 딸은 전문대 입학을 해서 다니고 있다.

복지관에서는 이 아파트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구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 공부방은 불안정한 프로젝트 지원비와 후원금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학습 지원은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안정적인 자원활동가가 요구된다. 따라서 공부방은 풍물이나 그림 그리기와 같은 예체능 중심으로 운영됐다. 주민이고 연구를 하면서 맺게된 인연으로 이 공부방의 후원자를 모아주면서 학습 지원을 강력하게 주장한 덕분에 지금은 공부방이 학습 지원을 겸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바뀌는 자원활동가에 의존하는 학습 지원이 얼마나 실하게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나마 이 공부방은 재정의 한계 때문에 오고 싶어하는 단지 내 아이들을 다 받지 못하고 25명으로 자르고 있어, 입소한 아이들의 2배는 될 정도의 아이들은 방치되고 있다. 중촵고등학생 공부방은 아예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이런 열악한 복지 상황에서 가난한 부모들은 앞의 사례들에서와 같이 아이의 사교육을 위해 악다구니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력을 다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이 가난한 계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소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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