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세계평화’ 포럼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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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새만금 갯벌 생명 평화연대>

5월 9일 영남대학교에서 “미국과 세계평화”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의 사회로 오다 마코토, 더글러스 러미스, 염무웅 그리고 정현백, 네 분의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오다 마코토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로 김대중 구출 운동, 김지하 구명 운동을 주도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B-29기의 폭격으로 화염이 가득한 오사카의 흑백 사진 속 어딘가에 그는 13세의 어린 소년으로 있었고, 그것이 그가 가진 미국과의 첫 만남이었다.

일본은 돌연히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고 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민주주의와 군국주의 하에서 나쁘다고 알고 있었던 자유를 선물 받는다. 대낮에도 하늘을 볼 수 없는 화염의 공포에 몰아넣었던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 일본 사람들은 당황했고, 그 당황과 몸으로 겪었던 전쟁의 참혹한 경험이 평화헌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본 스스로 만들어 낸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는 지금의 일본을 낳게 되었다.

생명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오다 마코토는 매카시즘이 나타나기 전 일본과 독일의 경우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선물받아 다행이었지만, 한국은 투쟁으로 싸워서 얻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현재의 일본보다 더 생명력 있는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명백히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죽어가는 미국에 일본의 평화주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투쟁으로 얻는 민주주의를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 다른 발표자인 더글러스 러미스는 일본 쓰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최근 은퇴한 이후 오키나와에서 저술을 하며 반전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녹색평론사에서 발간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으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과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알 수 없다”라는 우울한 답변을 하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도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기어코 전쟁을 일으킨 것을 보면 미국은 지금 논리가 통하지 않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서도 그 내용을 상세하게 볼 수 있는 PNAC(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라는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무서운 행동들은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모두 기획된 것이라 지적한다.

이번 포럼에 참석하며 지금까지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땅에 발 딛고 몸으로 겪은 삶의 무게에 관한 것이다. 어린 소년 오다의 전쟁 공포의 체험이 반전평화운동가로서의 그의 지금을 있게 한 반면, 미국의 부시는 전쟁이 무엇인지 겪어보지도 못하고 쇼를 하듯 군복입고 부박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명치유신으로 불리는 일본의 근대화가 타국에 대한 살육, 불태우고 압제를 한 역사라고 반성하는 오다에 이르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들을 피해자로만 규정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평화운동은 그나마 스스로 그들의 땅에서 몸으로 겪은 전쟁의 경험에 충실한 것이다. 이는 시민전쟁 이후 자기의 땅에서 단 한번도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채 부시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이 아닐까.

인간의 탐욕에 대한 사죄

이 땅의 많은 소박하고 작은 가치들에겐 희망이 있다. 우리는 생존해야하기 때문이며, 탐욕보다 생존은 더 큰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생존 그 자체인 숲을 지키기 위해 수만의 인도 여성들이 단식을 하고 나무에 몸을 매고 나무를 끌어안고 벌목을 막아낸 칩코 운동이 있다. 또 인도에서 대형댐 건설로 삶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이들은 물이 차오르는 집을 지키며 생존을 걸고 댐 건설을 막아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시점 우리 땅에도 인간의 탐욕을 사죄하며 뭇 생명들의 생존을 위해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두 성직자가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km에 이르는 길을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 수난의 순례를 하고 있다. 벌써 매연과 소음 가득한 서울로 가까이 접어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장엄한 것은 ‘무량수’의 뭇 생명들의 생존의 무게가 한 걸음 한 걸음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글러스 러미스는 지금의 정치 경제 체제는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고, 그래서 지금의 상황을 단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이 땅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토피아의 청사진은 아무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이 없는 지금 유토피아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앞으로 긴 시간에 걸쳐 새롭게 해나가야 할 수많은 실험들을 하나 하나 즐거운 마음으로 해보는 것임이 분명하다. 생존의 무게, 생명의 가치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모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통해서만이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허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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