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 19일 사과
2015년 10월 “세월호 연상시킨다”
…공연 취소 및 검열
피해 예술인들
“가해자 없는 사과해야” 분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공개 사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발언자는 연극 '이 아이' 연출가 김정이다. ⓒ뉴시스·여성신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공개 사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발언자는 연극 '이 아이' 연출가 김정이다. ⓒ뉴시스·여성신문

사회자가 마지막에 제안하기까지 박수소리는 없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예술인들의 아픔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015년 10월 한 연극 공연에서 행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일어난 지 약 4년이 지났다. 예술인들을 향한 공공기관의 사과는 이들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가해자가 빠진 사과라는 지적 속에 “반쪽짜리 사과”라는 예술인들의 외침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극장 1층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팝업씨어터’ 사태에 대한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을 했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예술위원회는 지난 정부 하 소위 블랙리스트 사태 당시 청와대와 문체부를 통해 전달된 예술인 배제 및 사전검열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해당 예술인 및 단체에 불이익을 주는 등 조직의 본분과 사명을 저버렸다”며 “이는 다시는 자행되어서는 안 될 국가 폭력이었다”고 말했다.

‘팝업씨어터’는 예술위원회 주최, 주관의 기획 사업 ‘공원은 공연중’의 프로그램이다. 극장 로비, 카페, 공원 등의 장소에서 돌발적으로 펼쳐지는 ‘팝업’(갑자기 튀어나온다는 의미) 형태의 연극, 무용, 음악 등의 공연이다. 사건은 201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팝업씨어터’ 참여 예술가 섭외 과정 때부터 블랙리스트가 적용됐다. 섭외 예정이었던 예술가들의 이름과 출생년도가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에 제출됐다. 청와대 등에서 블랙리스트 여부에 대한 신원검증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섭외 대상이었던 전진모 연출가에 대해 문체부로부터 배제 지시가 있었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에게 공개 사과 한 뒤 피해 예술인들의 "가해 당사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해 당사자들의 사과는 없었다" 등의 항의에 답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에게 공개 사과 한 뒤 피해 예술인들의 "가해 당사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해 당사자들의 사과는 없었다" 등의 항의에 답변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에게 고개숙여 사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들에게 고개숙여 사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후 그해 10월17일 ‘팝업씨어터’ 참가작인 김정 연출의 ‘이 아이’가 씨어터카페에서 공연됐다. 이 공연을 관람한 문화사업부장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고 문예위 경영전략본부장, 공연예술센터장 등에게 보고했다. 실제로 이들은 18일 공연을 방해했고 결국 중단시켰다. 문예위는 차기 공연 예정이던 ‘불신의 힘’과 ‘후시기나 포켓또’의 공연 대본을 제출하게 하는 검열을 했고 결국 공연을 취소하게 했다. 예술위는 두 공연이 취소되고 대본 검열 논란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시에 따라 사건의 사실과 다른 사과문을 게재했다. 공익제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김진이 문예위 사업 담당자를 정기인사에서 부당한 전보 조치를 하는 인사상의 불이익도 줬다.

박 위원장은 “예술현장의 동반자로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야 할 예술위원회가 본분을 다하지 않고 사명마저 저버린 이러한 잘못에 대해 늦게나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이 아이’, ‘불신의 힘’, ‘후시기나 포켓또’를 비롯한 ‘팝업시어터’ 참여 공연 팀과 기획한 직원들에게도 거듭 사과했다.

배우 박지일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에 대한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공개 사과를 들은 뒤 의견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배우 박지일이 19일 오후 서울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대표 사례인 '팝업씨어터 사태' 피해 예술인에 대한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공개 사과를 들은 뒤 의견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하지만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은 당시 실제 가해자들의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예위 사과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가해자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사과 과정에서 미진함을 후속 조치로 메워달라고 했다. 재발방지 대책은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예술인들은 “가해자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당사자들의 사과가 포함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라고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당사자들을 만났다는 박 위원장은 “(당사자들은) 죄송스러운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과 현장에 나와서 정면으로 사과를 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전해들었다”며 “당사자의 사과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예술인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지적해 주신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당시 블랙리스트 관련 가해자는 23명이었고 이 중 13명이 정직, 감봉, 면직 등의 징계를 받았다. 10명은 시효 적용이 안 되거나 퇴직 등의 이유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 ‘팝업씨어터’와 관련된 가해자 중 2명은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았다. 1명은 퇴직해 징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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