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규약 없는 드라마 제작 현장 성폭력에 무방비
성평등 규약 없는 드라마 제작 현장 성폭력에 무방비
  • 채소라 기자
  • 승인 2019.07.18 15:48
  • 수정 2019-07-21 0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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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제작진 90% “성폭력 피해 경험”
외모 성적 비유·음담패설·
입맞춤 등 신체 접촉도
방송계 노동 환경 개선 위한
컨트롤 타워·강제 규약 부재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활동 관련 사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성평등 규약 없는 방송 드라마 제작 현장이 성폭력에 무방비하다. 미투 물결 이후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한 영화계와 달리, 방송계는 흩어져 있는 기구를 관리할 컨트롤 타워가 없고 그나마 있는 자치 규약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최근 제작진 성추행 의혹으로 논란이 된 드라마 ‘키마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자 제작사 자체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24일 드라마 ‘키마이라’ 제작팀 회식 자리에서 남성 조연출 A씨가 여성 스크립터 B씨를 성추행했다. 사건을 인지한 제작사 제이에스픽쳐스 측은 올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촬영 중이던 해당 드라마 제작을 중단했다. 재발 방지와 팀 차원의 자숙의 의미라는 설명이다. 또한 스태프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해자 A씨가 B씨에게 사과하도록 하고, 이후 B씨가 지난 13일 스스로 촬영팀에서 나가자 A씨를 퇴사시켰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희망연대노조가 발표한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89.7%였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이 실태조사는 223명의 방송제작현장 노동자가 참여했으며 설문 참여자 중 여성이 93.7%였다. 또한 99.1%는 프리랜서‧파견‧계약직 등 비정규직이었다. 피해자들은 제작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성적 농담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 포옹, 손잡기, 안마, 입맞춤 등 신체 접촉을 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등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방송계 내 성폭력은 권위적인 현장 분위기와 고용형태에 따른 위계로 인해 발생한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 성폭력은 만연한데 실효성 있는 예방이나 사후 대책은 거의 없다. 드라마방송 스태프들을 취재한 결과, 실제로 촬영 시기나 소속된 제작사에 따라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 여부가 달랐다. 작년 초 tvN 드라마의 외주제작사 스태프로 일한 C씨는 당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올해 초 종영한 JTBC 드라마의 외주제작사 스태프 D씨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성범죄 이후 대처법이나 매뉴얼에 대해서는 “안내받지 않았다”고 D씨는 덧붙였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성상민 기획차장은 방송계에 성폭력을 비롯한 인권 침해 방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송 업계에 성차별, 성평등 문제에 대한 의무 조항이 없다. 콘텐츠 자치 규약 정도가 있기는 한데 문제는 ‘자치’ 규약일 뿐 강세 조약은 없다”고 말했다.

성 차장이 언급한 규약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12일 선포한 '성평등 실천 자치규약‘이다. 콘텐츠와 문화예술계의 성평등 문화 확산 실천을 위해 마련한 조치다. 지난달 20일에는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로 구성된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지상파방송 드라마제작환경 가이드라인 기본사항’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에는 드라마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및 표준 인건비 기준을 마련할 전망이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도 문제다. 성 기획차장은 “통합적인 기관이 없다는 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감독 하는 영화계와 달리, 방송계에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나 콘텐츠진흥원 같이 유사한 기관이 너무 오랫동안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침에 따라, 영화 제작 스태프들은 2017년부터 필수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는 영화발전기금을 지원받는 영화에 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관리, 감독한다.

드라마방송 제작 스태프들을 위해 더 나은 근로 환경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있지만, 제도를 체감하기까지는 아직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성 차장은 “법인 콘텐츠나 다큐멘터리와 달리 드라마는 지원금 사업 대상에서도 뒷전이다. 이제 만들어진 협의체 활동은 의미 있지만 당분간 실행안은 또 지켜봐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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