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남편 버린
어머니 여봉수와
독신 장애여성 교수의 삶,
유지원을 통해
우록리 할매들의
삶으로 이어지다

192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여봉수는, 1941년 황해도 송화군의 한 남자와 혼인했다. 1951년 1.4후퇴 때 집 앞 바다 건너 초도로 피난갈 생각을 하고 아들, 딸, 남편과 함께 피난선을 탔는데, 초도가 이미 피난민들로 꽉 찼다는 소식에 배는 남쪽으로 향했다. 피난선 안에서 서방은 동네에서 같이 피난 나온 과수댁과 눈이 맞았다.

전라북도 군산항에 내린 여봉수는, 다른 여자를 끼고 있는 서방과는 같이 살지 않겠다며 자식 둘과 함께 다른 피난민 천막을 얻었고, 후에 군산 내 다른 피난민촌으로 옮겼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 가을 어느 날, 과수댁과 자식들을 낳고 살던 남편이 군산시 장미동에 사는 여봉수를 찾았고, 이듬해 8월 서른 네 살의 여봉수는 둘째 딸이자 막내인 유지원을 낳았다.

유지원은 1982년을 생애 전환기라고 말했다. 여고를 졸업하고 여러 일을 한 후 수녀원에 갔다 ‘나온 해’이고, 첫 맞선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이거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일어서 나온 해’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생애 내내 거울이다.

같이 수녀원을 나와 대구에 살던 친구 집에 잠시 머물다, 평생의 독립을 위해 보건전문대에 입학했다. 1985년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위해 실습 나간 대구대학교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독신의 지체장애여성 교수가 뇌병변 장애아동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은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삶이라고 확신한다. ‘요육(療育)실기교사 임용시험’을 통해 특수학교 교사가 된다.

어머니 회갑 잔치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나 “내 절을 받을 자격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었고, “만들었으니 받아야지”라는 답에 절은 했다. 1990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죽음 전 4년을 대구 황금아파트 막내딸네서 함께 산 여봉수는, 자기 팔자를 물려받았나 싶어 걱정이었던 딸에게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네” 라고 말했다.

유지원은 특수학교 교사와 장애아동작업장 교사를 하다, 1996년 3월 장애여성청소년들과의 공동거주생활을 위해 대구 달성군 우록2리로 이사했다. ‘전라도 출신에 시집도 안가고 사는 여자’를 놓고 대구 깡촌 경로당에서는 한바탕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전라도’ 타령에는 ‘부모님이 피난민이었다.’고 응했고, ‘선생씩이나 하는 여자’인 덕도 봤다. 하루라도 밤늦게 귀가하거나 외박이라도 하면, 다음날 산골마을이 술렁거렸다.

2008년 난소암 치료를 하면서 장애여성들과의 공동생활을 접었고, 2014년 교사직도 명예퇴직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화장과 몸치장 안하고 모은 돈으로 틈틈이 사놓은 땅’에 할매들에게 배워가며 운동 삼아 농사일을 하면서도,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붙들렸다. 다 찾아봐도 “그냥 살자.”는 답 말고는 없더란다.

2015년 12월 마을 안동댁(유옥란 할머니)이 약봉지를 가져와 아침에 먹는 약과 저녁에 먹는 약을 가려달라고 했다. “그날 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어. 누웠다말고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앉아, 한글 파일에 표를 만들어 가나다라 아야어여를 쳤지.” 안동댁 하나랑 거실에서 시작한 한글 공부는 곧 백록마을회관 한글교실로 개설되었다. “성묘니 제사니 하며 죽은 어머니를 쫓아다닐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네 할머니들한테 잘 하고 살면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2016년 11월, 늘 이삼일은 늦게 우편으로 배달되는 한겨레신문에서 막 출간된 “할배의 탄생”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어머니 여봉수도 가끔 “내 살아온 거를 소설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 거다”라는 말을 했다. 저자 블로그에 들어가, 우리 동네 할매들 살아온 이야기 좀 써달라고 했다. ‘서울 것’이고 도시의 가난한 노인들 작업만 해온 저자에게 대구 깡촌 할매들의 구술생애사는 아주 낯선 일이었다. 밀고 당기는 통화를 하다, 하자고 하는 여자가 한겨레와 녹색평론 장기독자라는 말에, 와이파이도 되고 잠자리도 밥도 다 주겠다는 말에, ‘이 정도면 자빠져보자’고 작심하고 2017년 1월 첫 인터뷰 방문을 했고, 2019년 6월 ‘할매의 탄생’이 출간되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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