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진정한 공정성을 묻는 책, <형사법의 성편향>
법의 진정한 공정성을 묻는 책, <형사법의 성편향>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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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올 봄에 반가운 책 한 권을 접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면서 높은 벽으로 체감해 오던 ‘법’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 법학자 조국 교수의 책 <형사법의 성편향> (박영사)이다. 법은 ‘중립적이고 공정하며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배워온 우리들에게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법이 전제하는 성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기준이 사실상 남성 편향적이며 여성의 처지와 경험을 체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폭력피해자에게 “뭔가 당할 만 했겠지”, “혹시 유발하지 않았나”하는 의심의 눈초리와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있다. 전국의 성폭력상담소에 매년 4만여 건 이상의 상담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한 해에 몇 건의 성폭력이 일어나는지 조차 정확히 파악이 안되고 있다. 더욱이 고소율은 단지 6%정도로 추산되고 있어 나머지 94%는 숨은 피해자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어렵게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들은 수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장치의 미흡과, 담당자들의 왜곡된 성 인식으로 인해 ‘2차 피해’를 당하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출발해 성폭력과 가정폭력 범죄의 형사법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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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남성중심적 강간죄 형법규정과 해석론 비판>에서는 강간죄를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접근하지 않고 있는 현행 법 체계를 비판하고, 외국 형법의 예를 들어 아내강간을 인정해야 함을 주장한다. 사실 우리나라 현행법상에도 부부간의 강간이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할 아무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가정폭력특별법의 개정을 통해 가해자에 대한 형법 적용 이전에 접근제한, 보호관찰 등을 제안한다. 또한 실제 성폭력 범죄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폭행과 협박의 정도에 대해 폭행과 협박이 없는 ‘비동의 간음’의 범죄화론을 외국 형법의 예를 들어 소개하고 그 가능성을 가름하고 있다.



제2장 <형사절차에서 성폭력범죄 피해여성의 처지와 보호>에서는 성폭력범죄가 남성중심적 편견에 싸여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형사절차에서의 ‘제2차 피해자화’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며 현행 형사절차상의 보호조치와 그 한계를 짚어보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강간피해 고소 여성의 성관계 이력의 증거사용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이를 강력하게 규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제3장과 4장은 <매맞는 아내에 대한 법적 보호의 한계>와 <매맞는 여성의 대(對)남성 반격행위에 대한 남성중심적 평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즉, 기존의 형법으로는 장기적, 반복적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여성이 가정폭력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면책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아내구타를 ‘가부장적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현행법의 의의와 한계를 명쾌하게 소개하고 있다.



나는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로서, 평소에 성평등의 관점에서 형법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해온 저자가 펼치는 논의를 어떻게 성폭력피해 상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을 읽어갔다. 특히 법전문가가 제시하는 성편향적인 형사법체계의 비판이 정말 신선했고, 구체적인 강간의 개념 확대 등에 대한 외국의 판례 소개는 매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딱하게 여기기 쉬운 법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탁월한 능력과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각 장마다 첨부한 외국 법조항들을 영어나 독어 등 원어로 소개하고 있어 손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또한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 보는 명확한 이론적 근거는 실제 성폭력 피해자 상담의 현장에서 제일 시급하게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책에서 다소 선언적으로 다루고 있어 아쉽다. 이는 저자가 “여성주의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형사법에서 수용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 형사법의 원칙을 지키는 관점을 견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형사법의 성편향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지는 성평등적인 시각과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아 좀 더 구체적인 논의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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