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0일 판결
‘전적 책임’ 아닌 ‘주된 책임’으로 변화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동안 결혼이주 여성들은 이혼 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있음을 입증해야 한국에 장기체류 할 수 있었다. 체류 문제로 가정폭력을 억지로 견딘 여성들이 많았으나 앞으로는 ‘주된 책임’만 입증해도 체류 자격을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베트남 국적 여성 A(23)씨가 서울 남부출입국과 외국인 사무소장을 상대로 제기한 체류기간 연장 불허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2015년 한국인 남성 정모(40)씨와 결혼한 A씨는 유산과 고부갈등의 이유로 이듬해 7월 이혼소송을 제기해 2017년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정씨에게 이혼책임이 있다며 A씨에게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 명령했다. A씨는 임신 중 시어머니의 압박으로 편의점에서 일하다 유산했으며 결혼생활 내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는 이혼 후,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결혼이민 체류기간 연장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혼 책임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다고 당국이 봤기 때문이다. A씨의 소송에 1심과 2심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전적 책임이 남편 정씨에게 있다 보기 어렵다”며 “A씨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결혼이민자의 국내 장기체류자격 중 하나로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외에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를 든다. 즉 전적으로 배우자의 책임에 의해 혼인이 파탄난 경우에만 장기체류를 허가한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100% 한국인 배우자에 있지 않아도 결혼이주여성의 국내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즉, 상대방의 전적인 책임이 아닌 ‘주된 책임’이 있음을 증명하면 되는 장기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법원은 “한국인 배우자의 책임으로 정상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외국인에게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체류를 허용하자는 게 결혼이민 체류자격의 취지”라며 “오직 한국인 배우자의 책임으로 이혼했을 때만 국내체류자격을 연장한다면, 결혼이주여성은 혼인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인 배우자가 법령을 악용해 결혼이주여성을 부당하게 대우할 수 있다”며 “한국제도 이해나 한국어능력 부족으로 결혼이주여성이 평소 관련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도 못하고 이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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