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 (하) 이제 더 걸어갈 곳이 없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 (하) 이제 더 걸어갈 곳이 없다!
  • 심재혁
  • 승인 2019.07.11 09:00
  • 수정 2019-07-10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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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심재혁은 GS칼텍스 상무, 인터컨티넨탈 호텔 사장, 레드캡투어 사장, 태광산업 부회장 등을 지낸 기업가다. 은퇴한 뒤에는 여행을 즐기며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2018년 4월 40여일 간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여행기 두 편을 연재한다.]

프랑스 오리송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 길. ©심재혁
프랑스 오리송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 길. ©심재혁

 

알베르게의 식사

순례길을 걷다 보면 미국, 독일, 프랑스, 한국 등 세계 각지로부터 온 많은 순례객들을 만나게 된다. 지역적으로 가까운 유럽인들은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순례길을 마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공료 부담 때문에 가능하면 한번에 마치려 한다. 이러한 순례자들과 도중에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고, 또 며칠 후에 다시 만나기도 하며 회자정리를 실감하게 된다. 순례객들은 만나게 되면 또 헤어질 때면 “부엔 까미노(Buen Camino, Bon Voyage, 좋은 여행되세요)”라고 인사한다.

서울에서 중2 아들과 함께 온 아빠, 캐나다 유학 중인 딸과 함께 온 엄마, 퇴직 후 제 2의 생을 설계하려는 중년, 2017년 순례도중 발의 통증으로 중도 포기했다가 2차 도전 중인 여성, 독일계 파리지엥, 쾰른에서부터 걸어 왔다는 퇴직 교사, 호주에서 왔다는 동창들, 안내견과 함께 걷는 시각장애인, 두 살 반된 아들과 11개월 딸을 업고 걷는 독일인 부부, 손을 꼭 잡고 느린 걸음으로 걷는 영국인 노부부가 기억에 남는다. 또한 도보 순례객 외에도 자전거를 타거나 승마로 순례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 쾰른에서 온 은퇴한 선생님 헬가씨와 함께. ©심재혁
독일 쾰른에서 온 은퇴한 선생님 헬가씨와 함께. ©심재혁

순례길 도중에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한국인 여성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스페인 남성과 국제결혼을 한 분이었고, 또 한 분은 2015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스페인 남성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서울로 돌아 오자마자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그 스페인 남성과 합작으로 알베르게를 매입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저녁식사 단일 메뉴로 한식 비빔밥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한식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고추장은 사용하는데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로 비비고 콩나물 대신에 현지 야채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외국인 가운데는 참기름의 향취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콩나물을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배낭에 쓸려 어깨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양쪽 발엔 물집이 생기기도 하고, 발톱 하나가 까맣게 빠져가고,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생겨 몸은 아프고 지치는데 다행히 인내심도 따라서 늘어나나 보다. 도중에 발의 물집 통증이 심해져 보건소에 들렀더니 실이 달린 수술용 바늘로 물집을 꿰고 양끝에 실밥을 남겨놓아 진물을 배어 나오게 하더니 사흘 후에 실을 뽑으란다. 순례자 증명서가 있으면 그런 치료는 모두 무료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조개 모양의 표지석 위에 꽃을 심은 등산화가 놓여 있다. ©심재혁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징하는 조개 모양의 표지석 위에 꽃을 심은 등산화가 놓여 있다. ©심재혁

 

최근에는 이 순례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도로사정, 숙박시설, 치안, 위생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데 이제 안전은 전혀 문제없고, 몇 년 전까지도 있었다는 빈대(Bed Bug)도 사라졌다. 이곳에도 현대화 바람이 불고 있다. 순례길 도중엔 와이파이(WIFI)가 통하지 않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거의 모든 알베르게에는 WIFI가 연결되어 있다. 다만 스마트폰을 충전하려면 콘센트가 부족해 재빠르게 충전해야 할 경우가 많다. 나는 스마트폰에 카미노 필그림(Camino Pilgrim)이라는 앱을 설치해서 매일 아침,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 중간 마을마다 거리와 내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종이지도가 필요없었다. 세탁실에도 2유로 짜리 동전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곳이 많다.

큰 도시간 이동에는 시외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순례객도 있고, 아침에 다음 행선지까지 무거운 배낭은 택배 서비스를 이용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는 순례객도 있다. ‘내 짐은 내 삶의 무게’라는 생각에 나는 내 짐에 끝까지 책임을 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일부 여행사와 언론사에서 2주간 단기 순례 상품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곳도 있다. 경치가 아름답고 비교적 순탄한 코스를 택해 걷는 맛보기 순례 여행이나 적어도 산티아고 전방 100km 지점부터는 반드시 걸어야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나는 당초에 세 명이 함께 떠났는데 선배 두 분은 발에 통증이 생겨 중도에 헤어지기로 했다. 두분은 산티아고까지 800km를 걷고,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땅끝마을까지 900km를 걷고 산티아고로 되돌아와 다시 일행과 합류하여 포르투갈의 포르토-파티마-리스본을 거쳐 스페인의 세비야-마드리드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순례자 카드(크레덴샬)에 받은 알베르게의 스탬프들. ©심재혁
순례자 카드(크레덴샬)에 받은 알베르게의 스탬프들. ©심재혁

 

산티아고와 무씨아 순례 수료증

5월 15일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했다. 나는 장로교 신자이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의 미사에 참석하였다. 대성당 내 “I proclaim my faith in Christ Jesus and renew my Christian life”라고 쓰여진 동판앞에서 감사기도를 올리고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 들러 순례 수료증을 받았다.

계속해서 5월 20일엔 서쪽 땅끝마을 피니스테레(Finisterre)에, 그리고 5월 21일엔 드디어 북쪽 땅끝마을 무씨아(muxia)에 도착하였다.

39일 동안 900km를 걸은 것이다. 지도상의 거리가 아닌 실제 거리는 1000km가 넘었으리라. 매일 평균 약 24km를 걸었는데 일행과 헤어진 후로는 엿새동안 땅끝마을까지 100km를 더 걷고 산티아고로 돌아와야 했기에 보행속도를 높였고, 어떤 날은 하루동안 40km를 걸은 날도 있었다.

산티아고-피스테라-무씨아 이정표. ©심재혁
산티아고-피스테라-무씨아 이정표. ©심재혁

무씨아 해변의 바위에 걸터앉아 대서양을 바라보며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시절, 군대시절, 첫 직장부터 은퇴하기까지의 살아온 삶을 더듬어 회상하면서 돌아온 탕자의 회개 기도를 올렸다. 또 내 형제 자매들, 우리 가족들 생각을 하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다. 그리고 부모님 생전에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다는 회한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가 떠나기 전 주위에선 책을 한 권 쓰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번 순례길은 “unloading“이란 문자 그대로 내려놓고, 비우고, 버리고자 떠났던 길이었기에 책을 쓸 생각은 처음부터 내려 놓았었다.

스페인의 약국에는 대부분 체중계가 있기에 순례길을 완주하고 산티아고로 돌아와 몸무게를 재었더니 출발 전보다 6kg이나 줄었다. 내 기관지의 미세먼지와 장의 숙변등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낸 듯한 기분이 들고 몸이 훨씬 단단해지고 가벼워져 걸음걸이가 성큼성큼 날아갈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그때는 다른 코스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고 싶다.

우리 가족들 카톡방에 무슨 기념품을 사다줄까 물었는데 딸들이 쓴 회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시는 아빠가 바로 기념품이에요.”

 

[나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 일정]

4월 10일 Seoul - Paris 
    11일 Paris
    12일 Paris - Saint Jean Pied de Port
    13일 Saint Jean Pied de Port - Orisson                    (  7.4 km )
    14일 Orisson - Roncesvalles                              ( 18.2 km ) 
    15일 Roncesvalles - Zubiri                               ( 21.5 km )      
    16일 Zubiri - Pamplona                                 ( 20.3 km ) 
    17일 Pamplona - Puente La Reina                        ( 24.0 km )
    18일 Puente La Reina - Estella                           ( 21.9 km )
    19일 Estella - Los Arcos                                 ( 21.2 km )
    20일 Los Arcos - Viana                                  ( 18.3 km )
    21일 Viana - Logrono                                   (  9.5 km )
    22일 Logrono - Najera                                  ( 29.6 km )
    23일 Najera - Santo Domingo de La Calzada               ( 21.0 km )
    24일 Santo Domingo de La Calzada - Belorado             ( 22.7 km )
    25일 Belorado - San Juan de Ortega                       ( 23.7 km )
    26일 San Juan de Ortega - Burgos                         ( 26.7 km )
    27일 Burgos - Hornillos Del Camino                        ( 20.6 km )
    28일 Hornillos Del Camino - Castrojeriz                    ( 19.7 km )
    29일 Castrojeriz - Boadilla Del Camino                     ( 19.3 km )   
    30일 Boadilla Del Camino - Carrion de Los Condes           ( 24.6 km )
5월 1일 Carrion de Los Condes -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26.6 km )
    2일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Bercianos Del Real Camino ( 23.0 km )
    3일 Bercinos Del Real Camino - Reliegos                    ( 20.6 km )
    4일 Reliegos - Leon                                       ( 24.3 km )
    5일 Leon - Villadangos Del Paramo                         ( 21.3 km )
    6일 Villadangos Del Paramo - Santibanez de Valdeiglesias    ( 17.1 km )
    7일 Santibanez de Valdeiglesias - El Ganso                  ( 20.2 km )
    8일 El Ganso - El Acebo                                   ( 24.0 km )
    9일 El Acebo - Villafranca Del Bierzo                        ( 39.9 km )
   10일 Villafranca Del Bierzo - O Cebreiro                      ( 28.4 km )
   11일 O Cebreiro - San Mamede Lugo                        ( 36.0 km )
   12일 San Mamede Lugo - Portomarin                        ( 25.8 km )
   13일 Portomarin - Melide                                   ( 38.3 km )
   14일 Melide - O Pedrouzo                                  ( 33.2 km )
   15일 O Pedrouzo - Santiago de Compostela                  ( 20.0 km )
   16일 Santiago de Compostela - Negreira                     ( 21.0 km )
   17일 Negreira - Santa Marina                                ( 21.5 km )
   18일 Santa Marina - O Logoso                               ( 15,6 km )
   19일 O Logoso - Sardineiro                                 ( 22.0 km )
   20일 Sardineiro - Finisterre                                  (  9.2 km )
   21일 Finisterre - Muxia                                      ( 29.5 km )
   22일 Muxia - Santiago de Compostela
   23일 Santiago de Compostela - Porto
   24일 Porto
   25일 Fatima
   26일 Lisboa
   27일 Sevilla
   28일 Sevilla
   29일 Madrid
   30일 Madrid
   31일 Madrid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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