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펴낸
SF 소설 작가 김초엽
포스텍 석사 출신 과학도
“동 시대 여성에게 많이
읽히는 소설 쓰고 싶다“

ⓒ출판사 허블
ⓒ출판사 허블

지난해 겨울까지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였던 김초엽(26) 작가가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냈다. 그동안 발표한 SF 장르의 단편소설 6편과 새 단편 작품 1편을 엮어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SF 소설의 거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역 SF 작가들이나 그들의 소설 주인공은 주로 남성이었기에 이번 신간이 더욱 눈에 띈다.

김 작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페미니즘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게 됐다. 그는 “동경하고 사랑하는, 밉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다양한 내면을 가진 여성 인물들을 계속 써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습작을 할 땐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글을 자주 썼어요. 그러다 ‘왜 남성 주인공을 더 자주 쓰고 있지?’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것 같아요. 여성 서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다가 데뷔작 두 편 모두 여성 주인공에 관해 쓰게 됐습니다. 독자분들이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이번 소설집의 독자들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정이 간다’고 말해주셔서 마음이 통한 것 같아 뿌듯해요.”

2017년 데뷔한 김 작가는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과 소설 일기를 좋아했던 그는 “과학적 요소를 군데군데 녹이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SF 단편 소설을 조금씩 쓰게 됐다. 그러다 대학교 졸업 무렵 소설 작법서를 두루 섭렵하며 학습을 통해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번 소설집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가족과 생이별한 ‘할머니 과학자’ 안나가 주인공이다. 안나는 우주 웜홀로 인해 가족을 고향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가족이 있는 행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170년이란 세월을 고군분투한다.

그는 주로 차별 당하고 억압 받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 등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써냈다. 얼굴에 난 상처로 차별받던 전설적 해커(‘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경력단절과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엄마의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된 주인공(‘관내분실’), 우주 탐사에 실패한 최초의 여성우주인(‘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이다. ‘감정의 물성’처럼 연인의 로맨스를 담았지만 두 사람의 성별을 밝혀 적지 않은 수록작도 눈에 띈다.

ⓒ김초엽
ⓒ김초엽

김 작가는 영웅이나 롤모델이 반드시 금메달리스트’ 일 필요는 없다고 소설을 통해 전한다. 대신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각자의 삶을 일궈나가는 광경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찾고 세계에 맞서 변화를 끌어내는 이야기가 바로 김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화학도로서 수많은 실험을 하던 시절 느낀 “좌절감”이 반영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세계로부터 소외감을 느끼지만 비관하지 않는 인물들에게 마음이 가요. 잘해보고 싶고 탁월해지고 싶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지만 실패하는 인물들이죠. 제가 쓴 주인공들과 달리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노력해서 뭔가를 성취하는 인물들이 존경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게 돼요.”
  
김 작가만의 ‘감성 SF 세계’는 더욱 밝고 따뜻해질 전망이다. 차기작을 구상 중인 김 작가는 “우주를 여기저기 떠도는, 옷가게 주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초고를 완성한 장편소설의 경우, 이번 소설집의 ‘감정의 물성’ 연장 선상으로 ‘감정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한 근미래 한국 사회가 배경이다.

“같은 세대 여성들에게 자주 읽히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과 아주 짧은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용기를 얻는 기분이 들어요. 제 소설이 독자에게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 위의 작은 위로 한마디가 된다면 기쁠 것 같아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