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화 교수 강연 ‘여성주의: 그 사무침과
설레임-이제 안티에서 프로로 갈 수 있을까’
환경 새롭게 바라보는 ‘의식화’와
대가 없는 나눔 ‘선물경제’ 통해
착취·억압 연쇄 끊어야

가배울살림간에서 열린 ‘제12강 여성주의: 그 사무침과 설레임-이제 안티에서 프로로 갈 수 있을까’에서 장필화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가배울살림간에서 열린 ‘제12강 여성주의: 그 사무침과 설레임-이제 안티에서 프로로 갈 수 있을까’에서 장필화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우리는 인간의 원형을 남성으로 상상합니다. 남성 대신 아줌마를 떠올리려 해도 아름다운 여성 모델을 떠올립니다. 인간의 원형으로 가슴과 엉덩이가 큰 풍요의 여신을 상상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요?”

6일 서울 서초구 가배울 씨앗살림간에서 열린 살림페미 아카데미 ‘제12강 여성주의: 그 사무침과 설레임-이제 안티에서 프로로 갈 수 있을까’에서 장필화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원형을 다시 상상해보길 제안했다. 

장 교수는 먼저 여성을 억압하는 핵심으로 읽히는 두 가지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간략히 설명했다.  “가부장제는 역사의 시초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가부장제가 진리이고 불변하는 역사이며 곧 문명과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하고, 가부장제도의 핵심으로 “전쟁 시스템”을 들었다.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은 기리지만 아이를 낳다 죽은 여성은 기리지 않는다. 이것이 가부장제가 재생산의 가치를 낮게 바라보는 견해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와 손잡고 발전했다고 짚었다. 자유주의에서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점, 계산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상정된다. 장 교수는 “최대한 감자튀김을 빨리 만들기 위해 모든 감자를 같은 크기, 같은 모양으로 잘라내고, 그렇게 자르기 위해 동일한 크기의 감자를 키워내는 '맥도널디제이션'은 여기서 시작된다”며 “원형을 잃은 감자처럼 우리들도 인간의 원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수염 난 남성이 인간의 원형으로 생각되는데, 가슴 넓은 아줌마를 인간의 원형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라고 되물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그는 여성주의가 갖는 대안으로 새로운 의식화와 선물경제를 제안했다. 의식화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진리로 생각하는 대신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반드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깨닫는 것을 뜻한다. 기존 인간 원형에 대한 의식화를 통해 “대가 없이 주는 존재들을 인간의 원형으로 삼아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했다. 장 교수는 이러한 존재, 즉 성별이나 혈연에 관계없이 마치 엄마와 같이 대가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를 마더러(motherer)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마더러에서 출발한 선물경제는 자본주의 아래서 기본이 되는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것으로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살피고 상대를 충족시키고, 타인의 만족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물질적 풍요를 충족시킨다고 소개했다. 그는 “의식화와 선물경제를 통해 착취와 억압의 연쇄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후 강연내용과 개인적인 고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아파트 도서관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아이를 기르는 주부라고 소개하며 “성차별적인 상황들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지만, 성차별을 가볍게 지적했을 뿐인데 굉장히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장 교수는 그에 대해 “우선 함께 의견을 하는 동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조급하게 생각하며 왜 이렇게 뒤처지거나 느리냐고 화를 낼 필요 없다.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정리하고 네트워킹과 홍보, 연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필화 이대 여성학과 교수는 제자들을 ‘동지’라고 표현했다. “저는 함께 동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교수와 학생이라기보다 여성학의 방향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는 하나의 팀이었지요. 졸업생들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장필화 이대 여성학과 교수는 제자들을 ‘동지’라고 표현했다. “저는 함께 동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했어요. 교수와 학생이라기보다 여성학의 방향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는 하나의 팀이었지요. 졸업생들을 대단히 존경합니다.”

 

한편, 장 교수는 1984년 당시 아시아 최초로 생긴 이화여대 여성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하며 우리나라 여성학 학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30년간 여성학을 강의하며 한국여성학회와 아시아여성학회를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정년퇴임 후  ‘생명·정의·사회를 위한 여성학’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여성연구소 소장, 이화리더십개발원 원장,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 아시아여성학회 회장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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