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웃어 제발 울어’… 강요를 거부한다
‘제발 웃어 제발 울어’… 강요를 거부한다
  • 김진수 기자
  • 승인 2019.07.10 11:20
  • 수정 2019-07-10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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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미술 거장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
소비·젠더·계급·사회 비판
44점 작품 전시
한글 신작 2점도 선보여
12월29일까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제(제발웃어제발울어)'(2019)
'부제(제발웃어제발울어)'(2019)

‘충분하면 만족하라’

관객은 미술관 로비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놀란다. 전체 가로 21m 세로 6m 크기의 여덟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로비 외벽에 쓰여 있는 ‘Plenty Should be enough’의 한글 버전으로 미국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첫 한글 작품이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바늘로 눈을 찌르는 듯한 모습의 사진이 있다. ‘Shame it, Blame it(부끄러워하라, 비난하라)’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어떤 메시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핵심 기관인 눈이 위협받는 것은 알 수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개관 1주년을 맞아 열고 있는 여성주의 미술의 거장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 74)의 아시아 첫 개인전 ‘바바라 크루거: 영원히’에서는 미술 작품의 거대함에 전율이 느껴진다. 초기작인 1980년대 작품부터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제작된 한글 작품 2점을 포함한 작품 44점을 볼 수 있다. 지하 1층 1전시실에 들어서면 마치 3차원 공간에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가로 5.7m 세로 28.7m 높이 18.3m의 거대한 공간을 흑백의 텍스트가 수놓았다. 2017년 공개된 '영원히'(Forever)라는 부제의 설치물이다. 마주하고 있는 두 벽 사이에는 당신(‘You’)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는 문장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인용한 것이다. 바닥을 가둔 메운 문장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했다. “만약 당신이 미래의 그림을 원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영원히 짓밟는 군화로 상상하라.”

'부제(영원히)'(2017). 5.7mx28.7x18.3m의 거대한 공간 안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의 문구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문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부제(영원히)'(2017). 5.7mx28.7x18.3m의 거대한 공간 안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의 문구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인용한 문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에게 더 이상 영웅은 필요 없어(We don't need another hero)’(1987)는 성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더 이상 영웅은 필요 없어(We don't need another hero)’(1987)는 성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바바라 크루거 작가는 미국 출신으로 권력과 통제, 대중 매체와 자본주의, 진실의 왜곡과 성 역할의 고정관념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작업해왔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 등 작품 카피로 1980년대 미술계를 흔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한 곳에 두는 광고 형식이다. 짧은 텍스트를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방식으로 한 작업들이 많아 광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잡지사 디자이너로 10여 년을 일한 경험이 기반이다. 1965년 미국 뉴욕시 파슨스 디자인학교를 다닌 그는 잡지사 디자이너와 사진 편집 등을 했다.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다. 미술관과 갤러리뿐만 아니라 도심 곳곳이 그에게는 전시 공간이다. 옥외 광고판부터 버스타드, 잡지, 신문, 포스터, 공원, 기차역 플랫폼에도 작품을 걸었다.

1전시실을 나와 2전시실을 가는 길목에 거대한 붉은색 바탕의 흰 글씨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직사각형의 가로 4.6m 세로 2.6m인 이 전시물에는 ‘제발 웃어 제발 울어’라고 써져 있다.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2019)로 크루거 작가의 두 번째 한글 작품이다. 사회의 강요와 억압을 비판하는 문구로 해석된다. 페미니즘 작품으로 이미 알려진 작품들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포토몽타주 기법(사진과 텍스트 오려붙이기)을 사용한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는 낙태 금지에 반대하고 낙태권리 회복을 위해 만든 작품이다. 당시 시위에 나선 여성들이 이 작품을 시위 홍보 포스터로 쓰면서 알려졌다. 한 여성의 얼굴이 반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는데, 오른쪽 얼굴은 분노를 한 형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영웅은 필요 없어(We don't need another hero)’(1987)는 성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작품이다. 한 소녀가 한 소년의 근육을 만지는 모습의 사진은 문구와는 대조적이다. 성 이데올로기의 비판이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아카이브룸에서는 크루거 작가가 참여한 여러 잡지의 표지와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표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에 ‘패배자(LOSER)'라는 문구를 붙인 2016년 10월 발간된 뉴욕 매거진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때 나온 잡지로 바바라 작가의 거침없는 사회 비판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2월29일까지. 02-6040-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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