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광고, 성평등 광고 2배
영국, 성 고정관념 강화 광고 금지
한국은 현재 사후 심의로 제재
성차별 등 구체적 규정 없어

세탁기와 건조대가 나오는 탈취제 광고에서 등장인물 모두 여성이다. ⓒTVCF
세탁기와 건조대가 나오는 탈취제 광고에서 등장인물 모두 여성이다. ⓒTVCF

 

한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광고. 남녀 모델이 각각 등장한다. 두 명 모두 운동 후 해당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는 설정인데, 남자는 강하고 땀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다. 반면 여성은 운동하는 모습보다는 일부 신체를 비추며 날씬한 것을 강조한다. 세탁기와 빨래 건조대가 배경인 한 탈취제 광고에서는 등장인물 두 명이 모두 여성이다. ‘빨래는 여성의 몫’이라는 성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광고에도 성차별적 인식과 성 고정관념이 담긴다. 지난해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불고 난 뒤 사회적으로 성평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광고계는 여전히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성차별을 조장하는 광고 비율은 성평등한 광고에 비해 두 배 가량 많다.

서울YWCA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대중매체 양성평등 내용 분석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3월25일부터 4월14일까지 381편의 공중파·케이블·인터넷·극장·바이럴(입소문) 광고를 분석한 결과 성평등적 광고는 10편(2.6%)이었지만 성차별적 광고는 두 배가 약간 넘는 22편(5.7%)이었다. 역할에서도 성별 차이가 있었다. 광고 속 등장하는 주요인물 469명(여성 211명·남성 258명) 중 ‘육아를 하는 사람’은 5명 중 4명이 여성이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은 11명 중 9명이 여성이었다. 반면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23명 중 15명이 남성이었다.

한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광고에서 우람한 남자는 격렬하게 운동을 한다. 반면 여성은 운동보다는 날씬한 몸매가 강조된다. ⓒTVCF
한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 광고에서 우람한 남자는 격렬하게 운동을 한다. 반면 여성은 운동보다는 날씬한 몸매가 강조된다. ⓒTVCF

최근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 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는 방송과 온라인, 소셜미디어 등에서 성 고정관념을 일으킬 수 있는 광고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성 고정관념이 담긴 광고가 어린이나 청소년, 성인들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불평등한 성 역할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벨기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인도, 프랑스. 핀란드 등에서는 성 차별 광고를 방지하는 법률이나 법령을 마련했다.

국내에서 광고가 TV에 나오기 위해서는 방송사업자나 방송통신위원회의 위탁받은 기관을 통해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 제재를 내릴 수 있는 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사후심의를 통해서다. 광고에 관한 법령에 ‘성평등’이나 ‘성 고정관념’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현행 규정은 ‘방송광고는 국가, 인종, 성, 연령, 직업, 종교, 신념, 장애, 계층, 지역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 제13조)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방송 내용에 있어서 일상적으로 광고를 통해서 성적인 편견이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한 게 있으면 (13조) 조항을 적용해서 심의규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브의 ‘#MyBeautyMySay’ 캠페인 ⓒ도브 유튜브
도브의 ‘#MyBeautyMySay’ 캠페인 ⓒ도브 유튜브

광고계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게 펨버타이징(Femvertising)이다. 페미니즘과 애드버타이징(광고)를 합친 말이다. 페미니즘적 시각을 입힌 광고다. 미용·위생용품 브랜드 도브(Dove)는 2004년부터 ‘#MyBeautyMySay'을 통해 펨버타이징 캠페인을 했다. 변호사, 권투선수 등 다양한 직군의 여성을 등장시켜 모든 몸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국내에서는 최근 스포츠브랜드 나이키(Nike)가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라는 제목의 캠페인으로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개그우먼 박나래, 가수 엠버·청하, 프로골프선수 박성현 등을 통해 여성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기업들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 뭉치기도 한다. 구글과 존슨 앤 존슨 등은 2017년 유엔 여성과 제휴해 ‘비고정관념 연합’을 만들기도 했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고정관념이 담기지 않은 광고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서울YWCA 여성참여팀 강유민 매니저는 “광고제작자들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광고를 파는데 있어서는 기존의 성 고정관념이나 혹은 익숙한 클리셰를 사용해서 설득하는 게 쉽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차별적인 인식을 (광고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펨버타이징 광고에서 여성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다루는지 논의가 되고 있는 단계까지 나간 상태”라고 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