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과 이론 갖춘 ‘여성성’ 정치풍토 변화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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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여성성’이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참신·청렴을 바탕으로 한 ‘여성성’은 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 사진은 지난 달 차도르 차림으로 반전시위를 벌이고 있는 개혁당 여성당원들. <사진·민원기 기자>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비례대표)은 평소 큰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말소리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정치가 목청만 높여 될 일이 아니란 소신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 때도 웬만해선 목소리 높이는 일이 없다. 정치란 으레 고함치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아는 이들에겐 답답하겠지만, 작지만 정곡을 찌르는 발언에 이끌려 그를 지지하는 여성이 많다.

2일 열린 범개혁세력단일정당 건설 토론회에서도 이런 그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 청중이 ‘차라리 당을 나가란 소릴 듣고 있는데, 의원직을 내놓고 신당에 참여할 용기가 있냐’고 당혹스런 물음을 던졌다. 김 의원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나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죠?”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김 의원이 ‘여성성’ 짙은 남성 의원이라면, 같은 당 김정숙 의원(비례대표)은 그 반대다. 3월초 당개혁안을 놓고 열린 연석회의에서 남성 참석자들이 여성관련 개혁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김 의원은 “여자들이 무슨 거지냐. 무시하고 놀리지 마라”고 따져, 남성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여성성’은 곧 개혁

김 의원은 강력한 돌파력과 설득력을 발휘, 결국 당 개혁안에 결국 여성 할당을 명시하는데 성공했다. 김 의원은 국회 여성위원회에서 이론을 갖춘 달변가로 통한다. 1일엔 그가 대표로 있는 ‘21세기여성정치연합’ 서울시지부를 출범시켜 조직력을 과시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남성성’의 여성 정치인으로 표현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김 의원은 “남자들과 하도 싸워 과격해졌다”고 말하지만, 옳은 일이라면 타협을 모르고 밀어붙이는 그의 뚝심은 뭇 남성 의원한테선 찾을 수 없는 특유의 ‘여성성’이다.

‘구태를 벗고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개혁이 온 나라의 화두가 되면서 정치권과 정부 곳곳에서 ‘여성성’ 바람이 불고 있다. 가냘프고 섬세한 것으로만 치부했던 ‘여성성’이 때묻지 않은 참신함과 탄탄한 이론의 상징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것.

한나라당은 지난달 여성의 정치참여를 크게 늘리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 여성 후보를 지역구 30%, 비례대표 50% 할당한 것으로, 여성 의원과 당직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한 여성 의원은 “완강하게 반대했던 남성 의원들을 우리가 줄기차게 만나 설득했다”며 “옛날 같으면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르지만, 참신하고 때묻지 않은 여성의 등장이 정치개혁과 일맥상통한다는 주장에 대부분 공감했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말투로 할 건 하는 김홍신 의원

뚝심, 소신의 ‘여성’ 정치인 김정숙 의원

신당 창당 논의로 격변에 휩싸인 민주당 안에서도 ‘여성성’이 떠오르고 있다. 어떤 계파가 주도하든 새로 만들 당은 ▲사조직과 돈이 필요 없고 ▲풀뿌리 네크워크를 활용하며 ▲여성의 참여를 크게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 여성들의 ‘감각’과 일치하는 대목이자, 여성계가 주문했던 내용과도 같다.

민주당의 한 고위인사는 이런 흐름을 두고 “성전환 수술을 해야겠다”고 비아냥거렸다가 눈치를 받기도 했다. 어찌 됐든 ‘여성성’을 주류의 한 맥으로 인정한 셈이다. 한 여성 당직자는 “참여정부의 개혁 정신과 여성의 신선함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결과”라며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신당 논의가 본격화하면 당 안팎 여성들도 조직적인 참여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여성성’은 4·24재보선에서도 두드려졌다. 7인의 여성 후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명이 당선한 것. ‘섬세한 시정’을 앞세운 오영희 공주시장, ‘여성적 정치개혁’을 내건 박현옥 경기도 의원의 당선은 유권자들에게 ‘여성성’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개혁바람을 일으킨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의원은 “여성들이 주장해 온 깨끗한 정치, 생활정치가 정치개혁의 가장 큰 주제로 등장했다”며 “정치개혁 과정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여성성’을 두둔했다.

여성 의원 16인의 활약으로 국회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본회의장에선 여전히 고함치고 우기는 의원들이 많지만, 각 상임위원회는 일문일답식 질의에 힘입어 차분한 ‘토론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국회 귀빈식당은 ‘여성용’

여성위원회(위원장 임진출)가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달 전체회의에선 지은희 장관과 의원들이 어휘의 개념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성위는 또 호주제, 보육정책 이관 등 현안을 다루는 간담회를 많이 열기로 유명하다. 지난해와도 크게 달라진 분위기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노동환경위원회 등 여성 장관을 소관부처 장으로 둔 상임위원회들도 토론식 회의로 변해가고 있다. 경력 10여 년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올해처럼 회의가 진지하게 진행됐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며 “특히 여성 장관이 있는 상임위에선 시간때우기식 질의나 무성의한 자료 요청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여야 총무회담장으로 주로 쓰이는 국회 귀빈식당엔 요즘 여성들이 ‘단골’이다. 호주제 폐지, 보육업무 여성부 이관, 공무원 모성보호 방안 등 현안을 놓고 각 여성 의원들이 여는 간담회와 세미나가 잇따르고 있는 덕이다. 귀빈식당 근무자는 “여성 의원들이 행사를 하면 토론이 길어져 다음 일정에 차질을 줄 때도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토론의 결과물은 많다.

역대 최다 여성 장관 입각으로 국무회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 ‘성인지적 예산편성 지침’을 다른 국무위원들한테 전파한 뒤, 각 장관들이 양성평등적 예산편성을 따로 공부한다는 후문이다. 기획예산처 쪽에서도 관련 자료를 수소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자유스런 분위기를 강조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여성성’의 한 갈래로 보는 이들도 있다. 여성을 많이 배치해서가 아니라, 절차와 의례 대신 실속과 편리를 따지는 ‘살림꾼’의 품새라는 것이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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