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회오리속 새 정치 열망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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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은 어디? 지난달 29일 ‘평상복’ 차림으로 등원한 개혁당 유시민 의원이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과 단상쪽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대기업에 다니는 노정숙(36)씨는 요즘 텔레비전 보는 맛이 난다. 술자리 안줏감으로도 정치 얘길 꺼내지 않아 평소 ‘정치 혐오증 환자’로까지 불리는 그지만, 최근 여야 정치권에 부는 정치개혁 바람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덕이다.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여권이 신당을 만든다, 야권도 개혁을 한다 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어요. 뭔가 좀 바뀌겠구나 이런 기대가 생기네요.” 노씨는 내친 김에 새로 생긴 한 정당에 입당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시절 가졌던 소신을 늦게나마 정당을 통해 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윤리 교사인 최준열(남·33)씨는 최근 신문을 더 꼼꼼히 본다. 과목 특성상 수업시간에 정치판 돌아가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학생들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5년째 교편을 잡고 있지만, 요즘처럼 정치권에 흥미를 갖는 학생도 드물었다.

“교장선생님 자살사건, 네이스 문제 등 교육 현안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정치권 움직임이 아이들 눈에도 흥미있나 봅니다. 정치권에도 정말 개혁 바람이 일지 지켜볼 일이죠.” 최 교사는 며칠전 신당 창당과 관련한 언론보도 스크랩과 논평을 과제물로 내줬다.

새 정치 국민열망 ‘최고조’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 지역정치, 계파정치를 버리고 당원과 국민이 주인인 새 정치를 하자는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다. 2000년 온 나라를 뒤흔든 낙선운동의 열기에 견줄 만하다.

‘대세’를 읽은 정치권도 정당·정치개혁을 넘어선 ‘혁명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권에선 신당 창당론이 이미 공론화돼 각 계파들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야권도 곧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등 체제를 개편하는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흔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당·정치개혁은 후보 시절 ‘정치대혁명’을 주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했다는 게 호사가들의 풀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 여론의 반영인만큼, 이참에 정치권은 대대적인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4.24재보궐선거 결과는 이런 여론을 극적으로 웅변한 사례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자기개혁’에 실패해 참패했고, 한나라당은 그 ‘반사이익’을 챙겼을 뿐이란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여성 후보는 7명이 나와 4명이 당선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야의 힘겨루기 속에 유시민 의원의 당선은 적잖은 뜻을 지닌다. 민주당과 개혁국민정당의 연합공천이었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드러난 것. 유 의원 자신의 풀이도 이와 일치한다. “유권자들은 개혁세력이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정당문화를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다. 개혁세력의 명분있는 단결을 원하는 것이다. 개혁세력은 이런 국민의 요청에 화답해야 한다.”

유 의원은 국회 의원선서에 정장을 입지 않고 등장, 화제를 뿌렸다.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렸지만, ‘구태를 벗는다’는 상징성엔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분위기다. ‘유시민발 정치개혁’으로 불리는 그의 신당제안도 정치권 안팎에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국민들은 어떤 정치를 바라고 있을까. “지금까지 정치는 주인을 배제한 정치였습니다. 개발독재 정치, 가부장 정치, 반생명 정치라고 말할 수 있죠.” 녹색정치준비모임 서형원 간사의 지적이다. “사회적 소수는 물론, 생활현장의 주인인 여성과 지역을 철저하게 외면한” 정치였다는 것.

민주당 안팎에서 신당 창당을 주장하고 있는 각 계파나, 개혁국민정당의 신당제안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새 정치의 윤곽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공통점은 당원이 주인이고, 유권자들의 뜻을 반영하는 참여형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서씨의 지적처럼 그동안 정당·정치가 당원과 국민을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였다는 점을 정치권도 인정하고 있는 것. 돈으로 움직이는 ‘동원형 정당구조’를 깨자는 건 묵어도 한참 묵은 과제지만, 여전히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개혁세력 신당론 공감대 확산

지역주의를 없애는 것도 우선 순위에 드는 명제다. 호남권 소외론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당·정치를 원하는 것. 전국적인 지지를 얻으려면, 지역 특혜·차별을 모두 없애는 ‘정책과 노선’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전제다.

이미 여야 정치권의 화두가 된 여성 할당을 반드시 실현하는 것도 새 정치의 전형이 된다. 공정한 내부 경쟁을 통하되, 그동안 제 몫을 갖지 못한 여성들에게 공직후보로 나설 기회를 열어야 한다는 얘기다.

“보스정치와 그에 따른 하향식 공천, 돈주고 사는 당원 등 남성 중심의 구태문화에선 여성과 신인 정치인이 뜻을 펼 기회조차 없다. 지역·비례 여성 할당은 물론, 주요 당직과 의사결정 자리에도 30% 할당을 해야 한다. 그게 새 정치고, 새 정당이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김영옥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김 국장은 “조직과 동원의 정치가 아닌 보편타당한 참여를 전제로 한 인터넷 정치”도 새 정치의 모델로 내놨다. 오프라인 조직을 튼튼하게 꾸리되,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소통하는 ‘쌍방향 정치’를 구현하는 정당·정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중앙당과 지구당의 역할을 재편하자는 제안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앙당은 당원과 지구당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책을 생산·홍보하는 날씬한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 물론, 지구당은 실질적 생활정치를 구현하는 단위여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성현안 공론화 절실

문제는 실천. 새 정치 청사진을 현실로 옮길 사람과 조직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민주당 안 개혁세력, 한나라당 개혁파, 개혁국민정당이 하나로 뭉치는 신당론 쪽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문제를 놓고 민주당 안에서는 계파간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

민주당 안 여성들은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승희 여성국장은 신당 창당이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늘리는 개혁을 도저히 할 수 없는 형편”이며, “개혁적인 사람이 모여야지, 엉뚱한 사람까지 죄다 부르면 그게 무슨 신당이냐”고 지적했다.

시민사회 지도자들도 이런 움직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개혁당 유시민 의원은 그의 신당 제안에서 “새로운 정당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40∼50대 시민사회 지도자들도 결단하고 협력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대세가 된 듯한 신당론에 딴죽을 거는 이도 있다. 녹색정치모임 서형원 간사는 “구태정치 극복이란 가치를 명확히 하지 않는 한 지금 진행되는 신당 움직임은 결국 그들만의 세대교체, 권력이동이 되고 만다”고 꼬집었다.

‘그들만의 교체’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여성관련 현안을 띄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 김혜원 사무국장은 “호주제, 성매매 대책 등 여성관련 현안이 많지만 남성 위주 정치문화 때문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며 “여성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정치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들의 지적대로 ‘결단의 시간’이 임박한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새 정치를 바라는 여성과 국민들의 열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 흐름을 타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정치권의 ‘결단’에 달려 있다.

배영환·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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