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70년 맞은 김남조 시인
시집 『목숨』등 140여 권 써
“시는 어휘가 아닌 사유의 힘으로 쓰는 것”
윈문화포럼 ‘삶과 축복’ 특강
“풍요로운 문화 공유 자체가 축복”

김남조 원로시인‧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김남조 원로시인‧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1950년 시 ‘성수’를 발표하며 등단한 김남조 시인은 평생 숭고한 사랑의 가치를 노래했다. 92세 현역인 그는 올해 등단 70년을 맞았다.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람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김 시인의 시 ‘좋은 것’ 중 이 시구는 올해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여름편에 선정돼 광화문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김 시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시는 나이를 불문하고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오늘도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만난 김 시인은 “시간이 펼쳐주는 하루하루는 늘 다르게 다가온다”고 했다.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감성을 유발시킨다”는 이야기다.

김 시인은 첫 시집『목숨』(1953)으로 시작해, 『나아드의 향유』(1955), 『정념의 기』(1960), 『귀중한 오늘』(2007) 등 140여권의 시집을 펴냈다. 김 시인의 작품세계는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서 자아성찰, 인간성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며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해석된다(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문학평론가).

김 시인은 “타고나는 재능도 있겠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돌을 쪼듯이 작품들을 끊임없이 고친다”며 “나도 지금도 고친다. 과거에 출간했던 시전집 15권을 다시 출간한다 해서 다시 보니 고칠게 많아서 몇 줄 씩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면서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시는 어휘로 쓰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사유하는 힘으로 쓰는 일이며 문학적인 책임이 뒤따른다. 시인의 눈은 본질적인 것을 고민하게 포착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천부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표현해냅니다.”

김 시인은 “시간의 거울 앞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로 늘 새로운 것을 좇는 시인의 숙명을 표현했다.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문학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일상의 삶이 힘들었을 뿐 아니라 여성의 문학이 문단의 인정을 받기도 어려웠다.

김 시인은 “누구 집의 며느리가 대낮에 책상을 펴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조혼의 풍습이 있던 시절이라 사랑의 대상이 된 남자들은 이미 기혼자여서 사랑한다는 자체가 치욕이 되었던 시절이었다”며 “현재의 여성문학인들에게는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은 없다는 점에서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김 시인은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여성문화네트워크 주최한 제 47차 윈(WIN) 문화포럼 특강에 나섰다.

“좋은 분들과 살아가면서 느끼는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강연을 수락했습니다. 앞으로는 강연하기 힘들 것 같아요.”

김 시인은 이날 특강에서 나이듦과 함께 “시야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진다”면서 나이를 들고 보니 “세상은 훨씬 크고 넓고 깊더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선 거장의 ‘사랑론’도 들을 수 있었다. 김 시인은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랑 없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며 “저희들이 느끼는 사랑의 강도, 해석도 다르다”고 했다.

그는 특강 주제인 ‘삶과 축복’과 관련해서는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세계를 천착해온 김 시인은 자신의 문학의 주제어는 신앙시이며, 앞으로도 “좋은 신앙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가능하다면 정말 좋은 신앙시를 쓰고 싶습니다. 정말 축복이 있어요. 사랑과 신앙은 섞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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