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세상읽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 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 승인 2019.07.06 07:50
  • 수정 2019-07-06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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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강간
봉준호 ‘마더’에서의 신체 접촉

문제 제기하는 이들의 목소리 있어야…
‘내’가 괜찮다고 괜찮은 문제 아니고,
본인은 괜찮다는데 왜 남들이
뭐라하느냐 할 문제도 아냐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트로피를 받았고, 2011년엔 칸 영화제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유명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는 말론 브란도가 연기하는 폴이 마리아 슈라이버가 연기하는 잔느를 강간하는 장면이 있다. 모든 강간 장면은 보기에 편치 않지만 이 장면은 특히 그러하다. 폴은 이미 중년의 남성이고 잔느는 한참 젊은 여성이다. 폴은 잔느를 마룻바닥에서 강간하면서 버터를 윤활제로 사용한다. 버터라니. 서양 음식에서 버터란 마치 된장이나 고추장과도 같이 늘 식사에 곁들이거나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는 매우 흔하고 친근한 일상적인 식재료다. 모욕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잔느는 거부 의사를 표시하다가 운다.

게다가 잔느 역의 배우인 마리아 슈라이버는 이 장면에 대한 디테일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감독인 베르톨루치와 브란도는 서로 상의하여 버터를 사용한 강간 장면을 고안해 내고도 이를 슈라이버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베르톨루치는 슈라이버가 이와 같은 디테일을 알지 못하기를 바랐고 그 이유는 슈라이버가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느끼는 실제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촬영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감독 베르톨루치는 슈라이버를 의도적으로 착취한 것이다. 슈라이버는 화가 났고, 모욕감을 느꼈으며 실제로 강간을 당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에서 젊은 여성의 감정적 고통은 생생하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보면 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는 장면인 것이다. 19살의 신인이었던 슈라이버는 계약서에 없는 장면을 찍자고 할 때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영화는 1972년에 만들어졌지만 베르톨루치는 슈라이버에게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고 난 이후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영화 ‘마더’와 관련해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배우 김혜자 씨의 가슴을 남성인 상대역 배우가 만지는 장면을 찍으면서 김혜자 씨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마더’의 해당 장면에서 나타난 신체 접촉의 정도가 위 ‘파리에서…’의 그것에 비해 매우 약한 것은 물론이지만 문제의식은 같다. 감독이 배우들 간의 신체 접촉이 필요한 장면을 촬영하면서 접촉을 당하는 쪽의 배우에게, 이는 주로 여성 배우일 것인데, 미리 설명을 하고 허락을 받지 않았다면 이는 배우가 자신의 신체에 관하여 갖는 통제권 내지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배우의 합의나 허락 없이 이와 같은 침해를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사실은 이제는 이것이 문제라며 논란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꽤나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졌을뿐더러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바대로 촬영을 했다는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았기 때문에 벌어졌던 논란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 논란이 격해지자 김혜자 씨는 신체 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본인이 동의를 했다고 해명했다. 다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김혜자 씨가 이 논란과 관련하여 “세상과 사람들이 무섭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김혜자 씨가 권리를 침해당했을까봐 우려하여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배우 본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논란 때문에 오히려 “봉변을 당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어야만 어디선가 누군가가 원하지 않고 합의되지 않은 신체접촉을 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문제 제기는 김혜자 씨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여성 배우, 나아가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는 여성 일반을 위하여 논의되어야만 하는 문제다. ‘나’ 개인이 괜찮다고 해서 괜찮은 문제가 아니고, 저 사람 본인은 괜찮다는데 왜 남들이 뭐라하느냐 할 문제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배우 개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와 같은 문제 제기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온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듯하다는 것이다.

 

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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