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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고객과 만나는 일이 즐거웠어요. 고객 마케팅에 자신 있는 이유죠.”

농수산쇼핑 이종은(30) 마케팅전략팀 마케팅기획과장이 홈쇼핑 업계에 발을 들여 논 건 8년전. 지난 96년 LG홈쇼핑 텔레마케터로 입사하면서부터다.

“처음엔 주변사람들이 ‘너 뭐하니?’ 하고 묻는데 ‘전화 거는 일 하는데요’ 말하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에 빠져들었죠. 무엇보다 사람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즐기는 제 성격에 딱 맞았거든요.” 일에 재미가 붙으면서 그의 능력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입사 1년만에 다른 텔레마케터들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 직책을 맡게된 것. “웬만해서는 ‘내가 대신 해줄게’하고 말하지 않았어요. 상황에 따라 응대하는 방법을 가르쳤죠. 처음엔 이런 저한테 서운해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제 방식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계속 밀고 나갔죠.”

스물 여섯은 한 그룹의 팀장급인 슈퍼바이저를 맡기에는 어린 나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이끄는 편이어서 제게 그런 임무가 주어진 것 같아요. 저는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첫 직장으로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지만 그는 ‘디자인’보다 사장님이 영업하는 장소에 함께 갈 때가 많았다. 그의 친화력을 디자인 회사 사장님도 익히 아셨던 것.

텔레마케터는 다른 쪽보다 이직률이 많은 업종. 고객과 전화로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카드·배송·택배 등에서 시작해 상품지식도 많이 알아야 하고 고객 상담기술도 뛰어나야 해요. 아마 홈쇼핑 텔레마케터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 가장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걸요. 처음 시작할 때 시장을 키우기 위해 고객들에게 무조건 베풀었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고객’. “고객들도 많이 영악해 져서 웬만해선 감동 안 해요 홈쇼핑 쪽에서 고객은 ‘왕’이 아니라 ‘태양’으로 통할 정도죠.” 특히 전화 받는 내용이 모두 녹음되기 때문에 저절로 고객을 ‘태양’처럼 모시게 된다고.

홈쇼핑 콜센터 구축 책임 맡아

그도 사람이니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화 업무에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다. “고객이 아무리 욕해도 일단은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별별 욕을 다 들어봤죠. 좀 웃기지만 ‘귀엽군’하는 식으로 넘겨보기도 했어요.” 전화 받다가 우는 직원도 여럿 봤다. 그럴 때면 전화를 넘겨받아 슈퍼바이저답게 상황을 부드럽게 해결하곤 했다. 울며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다독거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으니까. 정작 그는 6년 동안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지만.

지난 2000년. 텔레마케터로 관록이 붙은 그에게 신생 업체인 농수산쇼핑에서 구애의 손길을 보냈다. 그에게 주어진 직급은 고객지원팀 교육파트 ‘대리’. “막 태어난 홈쇼핑 업체에 콜센터를 구축하는 일이 주어졌어요. LG홈쇼핑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라 새로 생긴 업체로 떠나는 저를 말리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도전 의식이 저를 가만두지 않더군요.” 농수산쇼핑으로 자리를 옮긴 후 3개월 간은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12시 넘게 일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일요일은 기대할 수도 없을 만큼 그의 몸과 마음을 회사에 바쳤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일년 안 돼 고객지원팀에서 ‘과장’으로 특진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마케팅 기획 부서에서 공개모집을 하더군요. 과감하게 지원했어요.” 마케팅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겁도 났다. “자리가 난 부서가 고객분석파트였어요. 다른 건 몰라도 고객에 관한 부분은 나보다 더 잘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가졌죠.” 자화자찬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지원했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은 이 과장이 됐으니까.

고객 마음 읽기 통해 마케팅 기획

“처음엔 막연했어요. 과장급이니 다른 직원들한테 물어보기도 힘들었구요. 고객지원팀에서 배우고 느꼈던 부분들부터 적용시키는데서 출발했어요.” LG홈쇼핑에서 VIP 고객 전담반을 했던 경험을 살려 우수고객 파트도 만들었고 고객 평가단 ‘싱싱가족’과 주부모니터도 꾸렸다. 화이트데이에는 여성 고객들에게 꽃바구니 사탕도 안겨주는 등 ‘고객이 뭘 원하는지 너무 잘 아는’ 이 과장이 펼친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경험에만 기댈 생각은 아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케팅에 대한 지식을 가져보기로 결정한 이 과장은 올해 서울디지털대학교 e-비즈니스 과정에 입학해 마케팅과 경영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년에 하나씩 자격증을 딴다는 원칙도 세워놓았다. 웹콜마케터·판매관리사 자격증은 일찌감치 따 놓았고 올해는 ‘텔레마케터 관리사’자격증에 도전할 생각. 실기시험만 남았기에 따 논 당상이다. 물류관리사·소비자 상담사도 그가 딸 자격증 리스트의 첫 머리에 꼽힌다. “기본적으로 일에 도움이 돼구요. 중요한 건 자기만족이에요. 시험을 보자니 억지로라도 책을 봐야하잖아요. 그렇게 나를 갈고 닦는 시간이 주어지는 게 좋아요.”

평소에 전혀 화장도 하지 않는 데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해 보여 ‘과장’이라는 그의 직책을 의심받을 때도 많다. “다른 업체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이 들어 보이려고 애썼어요. 화장도 하고 안경도 써보고.” 어느 날인가는 회사에서 그를 처음 본 여직원이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표현했다가 과장이란 걸 알고 무안해 한 적도 있다고. “일로 만나는 인간관계는 정말 자신 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아래직급의 직원들과 별 문제없이 지낼 수 있는 이유죠.”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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